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 근처 화수동 골목길의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화도(花島)고개 마루에는 낮부터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내렸다.

우리말로는 '꽃섬고개'. 고개 네거리에는 향미미용실과 제일기름집, 태창슈퍼마켓, 세계세탁소, 화도이발소, 후레쉬포크(정육점), 정금루(중국집) 등 점포와 음식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곳은 일제 강점기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전형적인 서민동네다. 배고픈 사람들이 언제나 공짜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민들레 국수집'도 바로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 "가장 배고픈 사람이 가장 먼저 먹어야"

밥 한 끼가 궁한 노숙자들에게 '비'는 언제나 야속한 존재다. 쌀쌀한 날씨에 입고 있는 옷이 전부인 그들에게 비에 홀딱 젖는 것만큼 커다란 고통도 없다. 그래서 웬만큼 배가 고프지 않으면, 비가 오는 날에는 좀처럼 움직이는 법이 없단다.

그런 그들이 장대비를 뚫고 민들레 국수집을 찾아 왔다. 이 식당을 차린 서영남(56) 씨가 웃는 낯으로 그들을 맞는다.

"또 술 먹고 왔구나. 술 먹고 여기 들어오면 안돼요!" 입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내도 주눅 들지 않는다.

"어~ 내가 술 마신 거 아시고 벌써 해장국 끓여 놓으셨네."

반갑게 먼저 인사를 하며 농을 건네는 노숙인들. 예쁜 꽃병이 놓여 있는 나무 식탁 6개. 오늘 점심식사 메뉴는 '반계탕'이다. 오징어젓갈과 고추멸치조림, 콩나물무침, 깻잎절임, 무생채가 반찬으로 올랐다.

연신 음식을 내놓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밝은 표정의 자원봉사자들. 어둡고 딱딱한 분위기의 무료급식소를 떠올렸던 예상은 빗나갔다.

동네에서 '국수집 아저씨'로 불리는 서영남 씨는 미국 워싱턴의 '미리암스 키친(Miriam's Kitchen)'처럼 노숙자들에게 최고의 호텔식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꿈이다.

"노숙자를 단지 불쌍한 존재로 보고 적선하듯이 밥을 주는 것은 옳지 않아요. 우리는 '모든 손님들이 자신은 환대를 받을 만한 특별한 존재'며, '품위를 갖춘 대접을 받고 있다'고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일까.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손님들이 줄을 서는 법이 없다. 줄을 서면 맨 꼴찌부터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배고픈 이들은 이미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난 꼴찌들이다.

그런데 민들레 국수집에서마저 선착순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면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국수집 아저씨의 생각이다.

"민들레 국수집은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를 지향합니다. 제일 많이 굶어서 제일 배고픈 분이 먼저 드시는 것이 우리의 기준이지요."

◈ '밥' 만큼 중요한 '책'

민들레 국수집은 우리가 오가며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무료급식소가 아니다. 배고프고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게는 '밥'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 작업도 소중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인문학 강좌'이다. 민들레 국수집 부설 '희망지원센터'에서는 매월 2·4째주 월요일 오후 6시에 인하대와 가톨릭대 교수들을 강사로 초청해 인문학 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최근 노숙자들을 위한 '독서 장려금제도'도 도입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발표하면 독서 장려금으로 3000원이 지급된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말로 발표해도 괜찮다. 책을 읽는 것이 어려운 이들은 '시'를 한 편 외워도 독서 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노숙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줄 모른다는 겁니다.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 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문학 강의나 독서를 통해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긍정적이고 주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죠."

세상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꿈꾼다. 그리고 그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 오늘도 앞만 보고 달린다. 귀한 것을 내가 먼저 소유하고, 높은 자리를 내가 먼저 차지하려고 말이다.

"노숙자들은 비록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줄 줄 아는 분들입니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밥'을 양보하기도 하고, 어렵사리 모은 쌈짓돈도 민들레 식구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습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을 통해 찾아옵니다."

민들레 국수집을 막 나서려고 하는데 벽에 걸린 액자 속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102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날. 인천 꽃섬고개에 자리 잡은 민들레 국수집은 꽃내음 대신 맑고 은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