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생명평화등불

(등불 1호) 모심과 살림의 현장 (1) 민들레국수집 2005년 7월 26일자

■ 모심과 살림의 현장

민들레 국수집

지난 해 아름다운재단과 ‘나눔으로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캠페인을 하면서 바로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사는 분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가끔 받습니다. 그 때마다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서 민들레 국수집이라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서영남(52) 님입니다.

민들레 국수집은 여느 식당과 다릅니다. 3평 남짓한 공간에 6인용 식탁이 시설의 전부입니다. 주방도 따로 없습니다. 아니 주방 옆에 작은 식탁이 하나 놓여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 식당에는 하루에 70명 이상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다른 식당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은 밥값이 공짜라는 점입니다. 여러분도 이제 아셨을 겁니다. 민들레 국수집은 끼니를 때우기에도 힘겨운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입니다.

“여섯 사람이 겨우 비집고 앉을 수 있는 식탁 하나뿐이지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곱 시간 동안에 찾아오신 분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매주 토, 일, 월, 화, 수 닷새 동안 문을 열고 목, 금요일에는 쉽니다. 두 번 세 번 오셔서 식사하실 수 있습니다.??밥과 국과 반찬은 마음껏 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남기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국수집이 문을 여는 시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혹시 제가 있을 경우에는 배고픈 분들이 찾아오시면 무엇으로든지 요기는 하실 수 있도록 해 드립니다. 또 민들레 국수집에 십자가는 걸려 있지만, 찾아오신 분이 마음에도 없는 기도는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잘 살아라, 일 좀 해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시혜 차원의 동정이 아니라 자기의 것을 나누는 작은 나눔에 찬성하시는 분들의 도움은 기꺼이 받아서 골고루 나눕니다. 그러기에 공개적으로 후원금을 모금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는 부분은 저의 아내가 내어 놓습니다. 가난은 서로 나눔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이 가득한 민들레 국수집. 소유마저 자유로운 서영남 님이 ‘투신’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때문입니다.” (서영남 님의 글에서)

식당 주인 서영남 님은 25년 동안 수도원에서 수사로 생활하다 ‘환속’해 우리 사회의 그늘에서 힘들게 사는 이웃을 섬기는 일을 직업으로 택한 분입니다. 수사 신분이었을 때는 전국의 교도소를 다니며 재소자들을 섬겼습니다. 98년부터는 2년 동안 서울교구에서 출소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해 만든 평화의집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서영남 님이 식당을 시작한 것은 여러 인연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수사시절 인연을 맺은 이들이 출소 뒤 찾아오자 그들과 함께 자립공동체를 만들 생각으로 집수리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민들레 국수집 건물은 출소자들의 자립공동체를 위해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자립공동체는 실패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뒤 서영남 님은 그곳을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식당으로 바꿨습니다. 재정이 넉넉하지 못해 밥 대신 국수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손님’들의 불만이 높았습니다. 어렵게 사는 분들이라 국수로는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밥으로 메뉴를 바꿨다고 합니다. 식당이름을 바꾸지 않은 이유에 대해 “손님들이 영양상태가 좋아져서 국수를 찾을 때까지 식당을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그대로 뒀다고 합니다.

민들레 국수집은 다른 무료급식소와 달리 반찬이 풍성한 게 특징입니다. 밑반찬만도 예닐곱 가지가 됩니다. 서영남 님은 가난한 이웃들의 건강을 생각해 가능하면 고기반찬을 많이 올리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노숙인이나 쪽방 거주자들이 ‘손님’의 대부분인 이곳은 가정이 해체되어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열세 살 소년가장도 단골손님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은 우선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중풍으로 숟가락질을 잘 못해도 빨리 먹으라고 채근하지 않습니다. 이빨이 시원치 않아 밥을 먹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려도 괜찮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이 오면 서영남 님은 직접 마중을 나가 부축해 앉히고 직접 밥과 반찬을 떠먹이기도 합니다.

식당 한 쪽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 위에는 사람들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VIP명단이라고 합니다. 별다른 분들이 아닙니다. 이곳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가장 가난한 이웃들이 서영남 님에게는 가장 귀한 손님입니다. 그 분들은 정말로 귀빈 대접을 받습니다. 서영남 님은 그 분들의 이름은 물론 식성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밥은 어느 정도 먹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등을 다 알고 있습니다. 손님들을 위해 서영남 님은 식당을 열기 전에 3개월 동안 조리학원까지 다녔다고 합니다.

식당 운영비는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충당합니다. 돈을 보내오는 분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쌀, 김치, 호박, 고등어자반 등 정감스런 ‘현물’을 보내오는 이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가장 큰 후원자는 서영남 님의 반려자인 강베로니카(48) 님입니다.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교정사목 활동을 하다 알게 된 강베로니카 님은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식당 운영비로 내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식당 운영비가 모자라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님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믿음은 가장 큰 자산이었습니다. 이 믿음 하나로 그는 일을 벌였습니다. 서영남 님은 ‘우리가 일을 벌이면 다음에는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말을 믿습니다. 식당 한 켠에 걸린 글이 그가 살고자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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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복기 님은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합니다. 기자로, 기획자로 활동가들보다 활동적이고 열정적이라고 주변에서 다들 말씀하시는데, 그 이는 도반들과의 수행모임에도 매우 열심입니다.
* peace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9-22 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