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바보입니다. 나이는 많고 재산도 없이 별 볼 일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물다섯 해나 몸담고 살았던 수도원을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하늘만 쳐다보며 배고픈 사람들과 함께 배고픔을 나누기 위해서 조그만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국수를 좋아했던 저는 재료비가 적게 들어갈 것 같아 국수집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보였습니다. 며칠씩 굶주렸던 사람에게 국수는 배고픔을 덜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곧바로 밥집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배고픈 사람들도 별식으로 국수를 찾을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민들레국수집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분들이 장마철과 겨울철 유독 늘어난다는 사실을 첫 해 겨울에야 알았습니다. 쌀을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이곳저곳에 손 내밀고 다녔습니다. 진땀이 났습니다. 정말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싶었습니다. 큰소리치면서 가난한 이들과 배고픔을 나누겠다고 시작했는데 쌀을 구할 돈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치심과 걱정을 달래면서 우리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손님들의 세상살이 형편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얼마나 세상 살기가 힘이 들까? 저야 눈 딱 감고 민들레국수집의 문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리 손님들은 돈이 없으면 김밥 한 줄도 살 수 없는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싶었습니다. 겨우 첫해 겨울을 견뎠습니다.


제가 강심장인줄 알았습니다. 돈 없고 집 없는 병들고 외로운 우리 손님들에게 겨우 밥 한 그릇 대접해 드리면서도 그들의 ‘신세’를 견딜 수 있는 강심장인 줄 알았습니다. 또 제가 바보였습니다. 가슴이 아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신 손님에게 “배고프면 어떻게 하나요?” 물어보았습니다. “배고프면 물마시면 돼요.” 물마시면 된다며 웃는 우리 손님들입니다. 그래서 조금의 여유만 생기면 단칸방을 하나씩 얻기 시작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손님 중 한 분이 노숙생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이렇게 한 분씩 늘린 민들레의 집 식구가 어느새 열 세 분이나 됩니다. 지난 사년 동안 몇 분의 민들레 식구들은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했고 몇 분은 가슴 아프게 떠나기도 했습니다.


한 달 전 쯤 새로운 손님 두 분이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서울 노량진역 근처의 조그만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해 드렸습니다. 두 손님은 어머니와 아들입니다. 몸이 아파서 몇 가지 약을 먹고 있는 어머니와 지체장애가 있는 아들이 두 해가 넘게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고 싶다고 하십니다. 단돈 십 만원이라도 모아서 오겠다고 합니다. 한 달이 다 되었는데도 모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헌 신문지를 85Kg이나 모아서 팔았는데 5,600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내일 당장 짐을 챙겨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곧바로 단칸방을 계약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월세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고 주민등록을 다시 하기 위한 과태료 십 만원도 당장 준비해야 합니다. 바보처럼 또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래도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 필자는 25년간의 종교적 생활을 접고 환속해 인천 동구 화수동의 노숙자 무료급식소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시민단체인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대표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