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어느 날 가슴 아픈 모습을 봤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식사하러 왔습니다.? 아버지는 사십대 중반의 막노동을 하는 사람 같았고, 아들은 겨우 열 서너 살 먹은 것 같았습니다.

“왜 이런 험한 곳에 아이를 데려왔어요?”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해도 일거리가 없어요.?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서 염치불구하고 아이 데리고 왔어요.”?

아이 엄마는 고생만 하다가 아이가 어릴 때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막노동으로 겨우 살아가는데 일한 곳에서 돈도 못 받고, 요즘은 일거리가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아이가 몇 살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열 세 살입니다.? 초등학교 사학년을 다니다가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와 함께 노숙을 하고 있는데 요즘은 빈집에서 겨우 산다고 합니다.? 아이는 밥을 두 그릇이나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이 이름은 정혁(가명)이라고 합니다. 정혁이가 아빠가 없을 때는 혼자 와서 밥을 먹도록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정혁이가 혼자서 식사하러 왔습니다.?

“정혁인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뭐지?”

“피자요”

민들레의 집 식구들도 피자는 먹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함께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피자가게를 찾아갔습니다.? 배달만 한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가서 삼겹살 10인분을 시켰습니다.? 어찌나 정혁이가 맛있게 먹는지 고기만 구워 주다가 나중에야 겨우 몇 점 집어먹었습니다.? 배가 너무 불러서 피자는 다음에 배달시켜서 먹기로 했습니다.??

“정혁이는 피자 다음으로 먹고 싶은 것은 뭐지?”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요.”

민들레국수집의 가장 어린 손님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면서 공부도 했으면 좋겠다고 권했습니다.? 동화책도 선물했습니다.

내일은 영하 십 몇 도로 내려가는 강추위가 예상된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정혁이가 걱정이 되어 급히 월세 10만 원짜리 셋방을 얻었습니다.? 기름보일러에 석유를 두 말 사서 넣고 방을 따뜻하게 해 놓았습니다.? 정혁이네가 지내고 있는 곳에 가서 당장 이사하자고 했습니다.? 옮길 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불도 냄새가 심해서 포기하기로 하고 집에 있는 이불을 내어드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함께 식사하러 온 정혁이 아버지는 밤새 정혁이가 네 활개를 치며 자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면서도 행복해 합니다.? 단칸방이지만 방도 마련했고 필요한 가재도구도 이곳저곳에서 마련했습니다.? 쌀도 나눠드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집에서 밥 해 먹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후에 다시 정혁이가 민들레 국수집에 밥을 먹으러 오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허리가 아파서 일을 못 나가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간 정혁이가 밥 먹으러 오질 않습니다.? 걱정이 되어서 집에 가 보았습니다.? 정혁이 아버지는 미안하고 어색하고 그래서 못 오시겠답니다.? 정혁이는 아빠가 굶는데 혼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오늘부터는 꼭 식사하러 오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손도장까지 찍었습니다.? 그 후에 정혁이 아버지의 허리 아픈 것이 어느 정도 나아서 간혹 일도 하러 다닙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식사하러 오는 횟수가 점점 뜸해졌습니다.? 정혁이도 야학을 다니면서 검정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중입자격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곧이어 고입자격 검정고시에도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학비가 들지 않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허가가 났습니다.???

지난 3월 4일입니다.? 정혁이가 드디어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오늘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이라면서 인사하러 왔습니다.? 그새 정혁이는 얼마나 컸는지 키가 180센티미터를 넘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요즘은 토요일이 되면 아빠가 계신 집에 옵니다.? 정혁이가 올 때쯤이면 아버지는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조금 사서 집에 들어갑니다.? 아들이 오면 돼지고기 듬뿍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조그만 관심과 배려에 당당하게 변화된 모습은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