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
 


 
작성일 : 06-10-28 10:55
교보생명 다솜이 친구 2006년 2월
 글쓴이 : 서영남
조회 : 7,715  
25년 동안의 수도원 생활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온 전직 신부 서영남 씨는 3년 전 배고픈 이들을 위해 '민들레국수집'이라는 식당을 열었다. 여느 무료급식을 하는 곳과 다른 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언제든지 먹고 싶은 만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국수를 대접하는 곳이었으나 배고픈 사람들이 밥을 원해 지금은 밥을 짓는다.
오전 10시. 막 김 오른 밥이 밥그릇에 담기고, 잘 익은 총각김치통의 뚜껑이 열리니 시큼한 냄새가 군침을 돌게 한다. 찐고구마·깍두기·시금치나물·멸치볶음·버섯야채볶음·불고기 반찬이 차례로 반찬통에 담긴다. 얼마 전부터는 공간을 넓혀 6인용 식탁 하나하나를 더 들여놓아 마음껏 가져다 먹을 수 있도록 뷔페식으로 식사를 준비한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식사준비가 끝나자마자 바로 첫 손님이 들어온다. 춘자·진원 씨 커플. 서씨는 춘자 씨, 김 좀 줄까? 진원 씨는 고기 좀 많이 먹어요 하며 추운 밤을 보냈을 이들에게 모자와 감기약까지 챙겨준다.
서씨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국수집 주변에 월세가 싼 단칸방을 하나씩 얻어서 이들 중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한 사람들은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잔소리나 간섭은 독약과도 같다. 춘자 씨 커플 역시 방을 얻어 줬지만 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하룻밤만에 집에서 나갔다. 그들은 이후 '자유공원' 계단 아래와 빈집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다.
식당 한쪽 벽에는 VIP명단이 적혀 있다. '민들레국수집'에 온 지 얼마 안 된 손님들이다. 이름과 입맛을 외워두려고 적어 놓았다고 한다. 이름을 불러야 친해지지요. 가난하고 힘없다고 이름까지 없는 것이 아닌데 누가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요. 노숙자들끼리 친하다고 해도 서로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름을 불러주면 스스로 힘을 얻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식사를 마친 이들에게는 언제나 과일과 요구르트가 후식으로 나간다.
이 귤도 요구르트도 누가 가져다 준 것인지 모릅니다. 후원자의 80퍼센트는 누군지 알 수가 없어요.
도와주는 많은 분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가 처음 국수집을 시작할 때도 거창하게 '공짜 식당'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영업신고를 하고 평범한 식당처럼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돈을 받지 않으니 그 모든 것이 필요가 없어졌다.
그가 원하는 것은 우리 나라 곳곳에 평범한 작은 분식집 같은 '민들레국수집'이 많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신성철 베드로님이 상계동에 2호점을, 두타스님이 부산에 3호점을 열었다. 뜻있는 분은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민들레국수집을 낼 수 있다. 다만 운영은 각자 알아서 자유롭게 해야 한다.
민들레국수집은 매주 목·금요일에 쉰다. 다른 급식소처럼 주말에 쉬게 되면, 손님들이 그 어디서도 밥 먹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식당의 휴일에도 서씨의 작은 배려가 담겨 있다.
그렇게 국수집이 쉬는 날이면 서씨는 전국의 교도소로 달려간다. 원래 교정사목 활동을 했던 서씨는 재소자들을 만나는 것이 본업(?)이라며 웃는다.
매일 식당일에 힘들 텐데, 쉬는 날까지 교도소로 활동을 가면 너무 무리하는 거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식당일·교도소 일 모두 누가 잡는 사람도 없는데 하기 싫은 일을 왜 하겠습니까. 청송교도소는 10년 넘게 한 달에 한 번 이상 다녔습니다. 그런데 가기 전 날 밤에는 늘 잠이 안 와요. 어릴 적 소풍 전에 잠이 안 오듯 빨리 가고 싶어서지요.
그의 가까운 목표가 있다면 '민들레국수집'을 24시간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욕심을 내지는 않는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그의 식당에 걸려 있는 액자 속의 문구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