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
 


 
작성일 : 06-10-28 11:02
가톨릭 신문 2004년 11월 21일자
 글쓴이 : 서영남
조회 : 7,607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운영 서영남씨
「민들레 국수집」서영남씨가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 운영하는 서영남씨

“노숙인·쪽방 거주자 모두 VIP”
“하느님께 드릴 감사밖에 없어요”

「민들레 국수집」. 인천 동구 화수동 골목길을 굽이굽이 오르다 아무런 꾸밈이나 연락처 하나 없이 달랑 이름만 새겨진 간판 하나를 찾았다.
3평 남짓할까. 그나마도 6인용 식탁과 의자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식사가 목적이 아니었던 기자는 운신의 폭을 좁히기 바빴다. 그러나 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자기네집 두레상 앞에 앉은 듯 넉넉한 또 편안한 식사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손님들이 계속 이어지는 식당 한켠에서는 「수사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서영남(베드로·51·인천 용현5동본당)씨가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13살 현동(가명)이가 들어오자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더니 얼른 삼겹살을 구워낸다. 잇달아 김광철(가명) 할아버지가 들어오자 반갑게 인사하며 달걀프라이를 만들어 밥에 올린다. 막일을 하고 온 최수근(가명)씨에게는 소주 한잔 건네는 여유와 배려도 잊지 않았다. 요리 중에도 각각 개인 밥상을 차려주고 반찬을 보충하고 상을 물리는 일까지 직접 해내면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에게는 밥을 먹여주며 안부를 묻고 농담도 건넨다.
한참 후 처조카가 일손을 대신하자 잠시 짬을 낸 서씨와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서씨는 지난해 4월 인천시 동구 화수동 골목길에 「민들레 국수집」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이름과는 달리 국수가 아닌 밥을 푸짐하게 제공한다. 국수로는 배가 차지 않는 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게다가 모든 식사는 무료다.
주 고객은 40~50대 노숙인들이나 쪽방 거주자들이다.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는 소년도,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들도 고정적으로 찾는다.
서씨는 4여년 전 25년간의 수도생활을 접고 환속해 출소자들의 자립을 돕다가 식당을 열게 됐다.
『어지간한 일은 다 하겠는데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어요. 「그럼 난 그냥 퍼주는 일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식당을 시작했죠』
때문인지 이곳 식당에서는 무엇이든 양껏 퍼준다. 특히 그가 퍼주는 사랑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식당을 찾는 이들은 모두 다 VIP 고객이기에 최고의 대접을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식당 벽에 붙은 칠판에는 「VIP」라는 제목 아래 손님들 이름을 깨알같이 써놓았다. 손님의 이름과 그들의 식성 등을 외우기 위한 것이란다.
서씨는 『누구든 사랑을 받으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살아간다』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술도 끊고 일자리도 찾은 이들이 예뻐 죽겠다』며 미소짓는다.
식당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주변에서 티도 내지 않고 알음알음 식재료를 보내주는 이들이 많다』고 답한다. 동네 주민들도 식당 앞을 오가며 아무말 없이 찬거리 등을 놔두고 간다고. 건물 주인도 월세를 받으면 곧바로 쌀로 바꿔 보낸다. 이웃집 푸줏간 아저씨는 아마 돼지 몇 마리는 빼앗겼을(?) 거란다. 그래도 부족한 것들은 모두 집에서 가져간다.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는 아내 강베로니카(48)씨는 식당 최고 후원자로 수익금의 전부를 식당운영에 쏟아붓고 있다.
스스로도 너무 행복해 하느님께 드릴 감사밖에 없다고 말하는 서씨지만 내심 올 겨우살이가 걱정되기도 한다. 지난해 겨울 손님들이 갑자기 늘어 문닫을 위기를 맞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식당을 나서는 길에 칠판으로 다시 눈길이 갔다. 한켠을 채우고 있는 김남주 시인의 시 「사랑」.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도움주실분=(032)764-8444





기사입력일 : 2004-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