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이야기 

'저기 그분이 계십니다.  노숙자로 말입니다.  오늘날 과연 어떤 교회가 그분을 안으로 들여 먹이고 입히고 잠자리를 내어드릴까요.  나는 내 생애의 마지막 날 그 질문을 자신에게 하고 싶습니다.  한때 절대 그 질문을 잊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는님께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환대하는 삶-도로시 데이, 로버트 콜스, 낮은산, 2010).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는 1932년 가톨릭 노동자 운동을 시작하면서 신문을 발행하고 환대의 집을 열고 노동자와 학자가 함께 공부하는 그런 멋진 공동체를 이끌었습니다.  환대의 집은 규칙도, 규제도, 위원회도, 기본재산도 없이 미국에서 지금껏 존재했고 또 존재하고 있습니다.

환대의 집을 흉내낸 민들레국수집이 문을 연지 열 세 해가 지났습니다.  겨우 세 평 남짓한 작디 작은 민들레국수집이 민들레 꽃밭처럼 무성해졌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처럼 유기적인 조직이고 싶습니다.  연말정산을 위한 영수증도 발급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운 분들이 도와줍니다.  민들레국수집은 후원회도 없습니다.  후원 명단도 없습니다.  후원자가 몇 분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예산도 없습니다.  고정적인 후원도 없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알아서 봉사를 옵니다.  어쩌다 일손이 모자라면 식사하던 손님들이 도와줍니다.  예산을 확보하지 않고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겁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하는 멋진 일이기도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참으로 희한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고, 민들레 식구들이 사는 민들레의 집.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민들레 꿈 공부방과 작은 어린이 도서관인 민들레 책들레 그리고 민들레꿈 어린이 밥집이 있습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와 민들레진료소 그리고 민들레 옷가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는 어려운 형제들을 돕는 일도 조금씩 규모가 커졌습니다.

2010년에 민들레국수집이 KBS TV '인간극장'에 두번째 방영이 되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홀씨 하나 책도 하나 내었습니다.   MBC 사회봉사대상 본상도 받았습니다. 이어서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상도 받았습니다.  곧이어 제1회 국민추천포상으로 국민훈장도 받았습니다.  제가 잘 난 줄 알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도와주겠다는 곳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많이 흔들렸습니다.  좀더 민들레국수집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싶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습니다.  노인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도 열고 싶었습니다.  멀리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도 돕고 싶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이야기가 담긴 책이 좀 팔렸습니다.  인세를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었습니다.  인세 수입의 일부를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 장학금으로 주고 싶어서 베로니카와 모니카와 함께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해서 나보타스 빈민지역과 퀘존의 빠야따스 쓰레기산을 방문했습니다.  그 후에 빠야따스 쓰레기 처리장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까리따스 수녀님들을 통해서 빠야따스 아이들을 후원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민들레 옷가게에서 아이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모아서 필리핀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아이들 백 네명을 위한 장학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일을 조그맣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포스코 청암 봉사상을 받게되었습니다.  상금을 받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길래 노인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과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을 여는데 보태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2013년에 청암봉사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민들레국수집 10주년 감사미사를 인천교구 최기산주교님께서 집전해 주셨습니다.  주교님께서 민들레국수집이 필리핀에도 열려는 것을 아시고 개인적으로 하다가 어떤 일이 있어서 중단하게 된다면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니까 교구와 함께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천교구 생명사랑운동본부와 함께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2013년 4월에 베로니카와 함께 필리핀을 방문했습니다.  마닐라의 까리따스 수녀원을 방문해서 빠야따스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해 드리고, 그 동안 수녀님들과 의견교환을 했던 빠야따스 쓰레기장 주변에 민들레국수집을 조그맣게 여는 것에 대한 조언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빠야따스 쓰레기 처리장이 포화상태가 되어서 변두리인 마리키나 시티 외곽으로 쓰레기 처리장이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뺘야따스 근처에 민들레국수집을 마련하려는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감한 처지에서 고민을 하다가 요셉의원 이문주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서 말라본 시티에 있는 요셉의원 마닐라 분원인 요셉의원 최영식 신부님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최영식 신부님께서 혼쾌하게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하셨습니다.  2013년 5월에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최영식 신부님과 이문주 신부님과 함께 칼로오칸 교구 까리따스 담당인 지지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칼로오칸 교구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세 곳의 장소를 추천해 주겠다고 하셨고, 그 중에 한 곳을 선택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해 8월에 베로니카와 모니카와 함께 지지 신부님이 보여주시는 세 곳의 가난한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나보타스 시티의 성 로꿰 성당의 수상가옥 마을, 말라본 시티 파도바의 성 안또니오 성당의 파라다이스 빌리지.  성 판크라씨오 성당의 라 로마 가톨릭 공동묘지 옆 마을.

참으로 가난한 지역입니다.  한 그릇의 밥이 절실히 필요한 가난한 곳이었습니다.  언젠가 민들레국수집이 피딩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밥을 먹을 아이들 명단을 작성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세 곳 중에 한 곳을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 곳 모두 민들레국수집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니카를 필리핀으로 보내기에는 무리여서 제가 필리핀으로 와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필리핀에서 민들레국수집이 할 일은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 아이들 공부방과 도서관 운영, 아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하는 것입니다.

인천교구에서 민들레국수집을 필리핀 칼로오칸 교구로 파견하고, 칼로오칸 교구는 민들레국수집이 교구 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교구간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해 10월에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교구장 주교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회사목국장 신부님과 함께 필리핀으로 갔습니다.  칼로오칸 교구와 인천 교구간 계약을 체결하고 민들레국수집이 필리핀에 비영리 법인을 구성해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비영리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필리핀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는 듯 했습니다.  2014년 초였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베로니카께서 맡아서 운영하기로 하고 저는 필리핀으로 들어가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는 준비를 거의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구의 어느 신부님이 민들레국수집이 교구에 큰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민에 고민을 했습니다.  조금 가난해지기로 작정을 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운영하고 있던 민들레희망지원센터 건물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교구내 사회복지 가입시설을 포기했습니다.  그 동안 필리핀 진출을 위해 교구와 함께 했던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서둘러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조그만 점포를 세 얻어서 희망지원센터에서 쓰던 세탁기를 옮겨서 설치하고 작게 샤워시설을 만들었습니다.

2014년 4월에 착잡한 심정으로 필리핀에 천막이라도 치면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필리핀에 갔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이 필리핀 칼로오칸 교구 내의 세 곳에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준비했던 비영리 법인은 사용하지 않고 민들레국수집이 하고 있는 것처럼 그냥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화재로 잿더미가 된 공동묘지 옆 마을에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수리해서  6월 9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어서 나보타스와 말라본에 피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민들레국수집도 열었습니다.낯선 땅에서 말도 할 줄 모르면서 시작한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은  KBS TV 인간극장에 세번째로 방영되면서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민들레국수집은 베로니카의 열정과 정성으로 더욱 알차게 운영되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좁디좁은 민들레희망센터를 첫 센터보다 조금은 좋게 새로 만들어서 우리 손님들의 보금자리로 만들었습니다.  

필리핀에 민들레국수집이 자리잡은지 어느새 일년 반이나 지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책도 읽고 공부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잘 자라서 필리핀의 큰 기둥들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체험한 것은 하느님은 지혜롭고 똑똑한 이들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으시고 가진 것이라곤 가난 밖에 없는 우리 VIP 손님들을 통해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노숙자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대사들이라는 것입니다.  

'저기 그분이 계십니다.  노숙자로 말입니다.'  도로시 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