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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6-09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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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영남
 조회 : 1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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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숙자 무료급식소 ‘민들레국수집’ 운영 서영남 씨
| 돈이 아니라 장미가 사람을 바꾼다. 독일이 낳은 최고의 서정시인 릴케는 구걸하는 노파에게 동전이 아닌 장미를 건넸다. 그 노인은 감동으로 온몸을 전율하며 구걸하던 자리를 떠났다. 인간적인 대접이 인생의 방향을 돌려놓은 것이다.
밥이 아닌 섬김으로 노숙자의 삶을 바꿔놓는 사람이 있다. 바로 6년째 노숙자 무료급식소인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는 서영남(56)씨다. 그는 노숙자들을 밥으로 ‘동정’하지 않는다. 대접한다. 돈을 내진 않지만 가장 귀한 ‘손님’으로 대한다. 오랜만에 사랑방을 찾은 손님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그의 국수집에는 ‘VIP’가 많다. “동정만큼 받기 싫은 게 없다. 이왕 줄 거면 사랑으로 섬겨라”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 나누면 행복해지는 비결을 들어봤다.
‘민들레국수 VIP’ 국수집 벽에 하얀 보드판이 붙어있다. 보드판 위에는 이름이 빽빽하다. 이렇게 VIP가 많다면 잘되는 식당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집의 VIP는 보통 식당과 다르다. 돈을 많이 내고 비싼 것을 시키는 손님이 아니다. “손님의 이름을 불러 드리기 위해 아직 못 외운 이름들을 적어 놓은 거예요.” 그리고 덧붙인다. “여기를 찾는 모든 분이 VIP입니다.”
그는 밥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인격적 대우다. 노숙자들이 가장 서러울 때는 ‘있는 사람’한테 무시당할 때다. 무료급식소도 노숙자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밥 주는 사람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줄을 제대로 서라는 고성은 가슴에 못으로 박히기 일쑤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은 줄이 없다. 하지만 순서는 있다. 배가 고픈 순서, 많이 굶은 순서, 노약자 순서다. 서씨는 이것이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수도원 나와 가난한 이들의 품으로
“수사님.” 사람들이 서씨를 부르는 칭호다. 그러면 서씨는 그냥 국숫집 아저씨라며 손사래를 친다. 벌써 수도원을 나온 지 9년이 넘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서 스물두 살에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더 예수님처럼 살려고 마흔일곱 되던 해에 세상으로 나왔다. 천주교 용어로 하면 ‘환속(還俗)’이다.
수도원을 나온 이유는 우리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너무 편해서다. “20년 넘게 수도원에 있으면서 고참이 되니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더라.” 그보단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 좋겠다 싶었다. 그때가 2000년 11월. 작은 보따리 하나 들고 세상으로 나왔다. 옷 몇 벌, 책 몇 권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한 달에 2만5000원이면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쌀 한 포에 소금 찍어 먹는 생활이었지만 말이다.
맨 처음 그가 만난 사람은 교도소 친구들이었다. 수도원에서 교도소 상담을 하면서 알고 지낸 이들이다. 갈 곳이 없다며 서씨를 찾았다. 방 하나 얻어 밥 해주면서 살았다. 인생에서 교도소 문을 한 번 거친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막노동판을 돌 수밖에 없었다. 서씨가 꾀를 하나 냈다. 직접 가게를 내고 그들이 직접 일을 받으면 자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한 달 만에 일감이 없고 돈이 떨어진 그들은 먼저 가게를 떠났다.
하루 300∼400명 손님 찾는 곳
그 빈 가게를 어떻게 할까. 서씨는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렇게 인천시 동구 화수동 달동네에 민들레국수집을 열었다. 식당이라야 4명이 비좁게 앉을 수 있는 식탁 하나가 전부였다. 하루 20∼30명 정도 찾으면 혼자서도 거뜬히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정부지원 받지 않기, 생색내기 후원 받지 않기, 후원회 만들지 않기, 예산확보 위한 프로그램 공모 안 하기. 식당을 찾는 이가 이제 하루 300∼400명으로 늘었지만 원칙은 아직도 유효하다. 민들레국수집은 모두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된다. 차를 타고 왔다가 선물만 내려놓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천사들이 많다.
식단은 금세 밥으로 바꿨다. 배고픈 이들에게 국수는 간식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맘대로 퍼담을 수 있는 밥과 뷔페식 반찬이 노숙자들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든다.
서씨가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 “사람들이 실컷 먹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 한 대 피우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행복하죠.”
지난해 그는 민들레국수집 5주년을 기념해 무료 공부방 ‘민들레꿈’을 열었다. 학원에 갈 형편이 안 되고, 부모가 미처 돌봐줄 시간과 여력이 없는 집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공부방 운영은 서씨의 딸 모니카(25)씨가 맡았다.
서씨는 민들레꿈을 열기 위해 딸을 꼬드겼다. 잘나가는 회계법인에 사무직으로 일하던 딸에게 “아까운 청춘을 돈에 팔 거냐.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지 않냐”며 권유했다. 이제 그의 딸은 애들을 돌보고, 밥도 해주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낮은 곳으로 오니 삶이 더 환해졌다.
노숙자 위한 문화공간 열 것
서씨는 요즘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바로 노숙자를 위한 문화공간을 여는 것이다. 벌써 몇 년째 꿈꿔오던 일이다. “노숙자들이 낮잠도 자고 영화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공간이 거짓말처럼 이달 말이면 문을 연다. 이름은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민들레국수집에서 걸어서 4∼5분 거리에 있는 인현동에 2층짜리 건물을 얻었다. 오랜 지인인 건축가 이일훈씨가 리모델링 설계를 맡았다. 설계도를 보여주는 서씨의 눈에 기대와 설렘이 넘쳐난다.
1층에는 세족실, 도서관, 상담실, 컴퓨터실, 다목적 사무실 등이 들어서고 2층에는 수면실, 탈의실, 샤워실, 세탁실이 갖춰진다. 그의 말을 빌리면 정말 ‘기가 막힌 건물’이다. 이 중 서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세족실. 노숙자들이 맨 먼저 ‘내가 대접받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되도록 서씨가 직접 노숙자들의 발을 씻겨줄 생각이다.
그는 사람은 고민해야 변한다고 말한다. 생명이 위협받을 때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배가 부르고 원초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문화적 배려를 통해 고민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귀한 대접을 받으며 여유를 갖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차차 삶이 변한다.
그들에게 ‘안전화’를
그는 노숙인들의 지저분함은 우리가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못 본 척하고 없는 사람 취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대접해주면 그들도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신념이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우리 독자들이 건설인이라고 하자 서씨가 바람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안전화. 노숙자들에게 안전화만한 선물이 없다는 것. 일하고 싶을 때 언제나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숙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선물이 안전화예요. 일을 하고 싶어도 안전화가 없어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어디 누구 안전화를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 오늘도 그는 노숙자를 위해 생각한다.
글=함현일기자 ham@ 사진=안윤수기자 ays77@
| | 작성일 : 2009-06-08 오후 7: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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