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민들레 국수집’ 서영남씨… ‘희망지원센터’ 내일 개소 앞두고 분주


“톨스토이 말처럼 신은 가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다고 하잖아요. 그럼 우리 집엔 날마다 신이 들어오시는 거죠.”

인천 ‘민들레 국수집’의 주인 서영남씨(55·사진)가 9일 자신의 국수집에서 멀지 않은 중구 인현동에 전국 첫 노숙자 문화센터인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문을 연다. 배고픈 노숙인들에게도 문화적 배려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6년 전부터 준비한 일이다.

“릴케가 걸인 할머니에게 동전이 아니라 장미꽃 한 송이를 준 것처럼 배고픈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밥이 아니라 인간적인 따뜻한 정과 대우라고 생각해요.”

민들레 국수집 앞에서 만난 서씨는 분주했다. 땀에 젖은 머리칼과 음식 국물이 묻은 흰 러닝 셔츠. 줄지어 찾아오는 ‘손님’ 접대에 청소, 정리 등 그의 손을 안 거치는 일이 없었다. 민들레 국수집은 다른 곳과는 달리 배식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작년부터 유기견 두 마리도 키우고 있는 서씨는 이틀 앞으로 다가온 센터 개소까지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희망센터를 연다는 생각에 무척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상 2층으로 구성된 희망센터는 노숙인을 위해 철저히 배려된 공간이다. 센터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세족실과 수백 개의 양말 꾸러미. 제대로 씻지 못하는 노숙인들을 위한 마음 씀씀이가 엿보였다. 또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과 컴퓨터, 영화 시청을 위한 빔 프로젝터, 한 곳엔 작은 상담실까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노숙인들의 직업 찾기와 개인 고충 상담이 열린다. 1층이 문화공간이라면 2층은 휴게실이다. 샤워실과 세탁실, 수면실이 있는 이곳은 노숙인들이 제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설계됐다.

센터가 마련되기까지 도움의 손길도 많았다.

건축가 이일훈씨가 희망센터 건물을 기획했고 배다리 서점과 한국순교독자수녀회는 책을 기증했다.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복지회는 센터 건립에 필요한 3억 2000만 원을 지원해줬다. 무엇보다 풀뿌리 같은 작은 도움을 준 익명의 기부자들이 가장 고맙다. 다음 아고라 모금 청원운동에선 보름여 만에 목표액 5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쌀꾸러미를 지고 와 내려놓자마자 부리나케 도망가버리는 이도 있었다. 서씨는 이들을 ‘착한 바보’라고 불렀다.

노숙인들도 기대감이 크다. 서울에서부터 이곳을 찾는다는 노숙인 양승은씨(58·가명)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눈치 안 보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의 전재산 300만 원으로 시작한 국수집은 이젠 노숙인들의 희망공간이 됐다. 그는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느껴본 적 없다”고 말했다. 9일 개소하는 민들레희망지원센터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문의(032)765-0185.

<글·사진 이상서인턴기자 c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