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
 


 
작성일 : 06-10-28 18:33
인천뉴스 2005년
 글쓴이 : 서영남
조회 : 12,120  
섹션 사람과 사람 > 행복한 인천등록일 2005-08-08
작성자 편집팀 (admin)다운받기
부조화의 세계 희망찾는 민들레 홀씨되어
세상 한켠 달콤한 쉼터, ‘민들레 국수집’
사람 좋아 보이는 서영남 씨가 활짝 핀 민들레 웃음을 웃고 있다.
인천시 동구 화수동 ‘민들레 국수집’. 3평도 채 안 되는 공간이라 주방과 식탁의 경계도 없는 이곳에서 그래도 하루에 백 명이 넘는 ‘특별한’ 손님들이 와서 식사를 한다.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노숙자와 가난한 이웃들로 언제든 이곳에 와서 마음껏 먹고 갈 수 있고 후식으로 요구르트나 과일까지 대접받고는 한결 든든한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이곳의 사장이자 주방장, 종업원으로 동분서주하는 이가 또한 이색적이다. 그토록 원하던 빈민사목을 위해 25년간의 천주교 수도자 생활을 접고 보통사람으로 화수동에 둥지를 튼 서영남(52) 씨가 그다.

주변 무료급식소가 몇 곳 있지만 점심시간에만 운영하고 양도 적어 그 밥을 ‘얻어’ 먹으려면 길게 줄을 서야 하고 그마저도 운이 나쁘면 헛수고다. 수요자보다는 운영자, 공급자 위주기 때문이다.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아무 때고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며 세 번을 먹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오다가다 들러 한 그릇 먹고 가는 셈이다. 누추하지만 의자와 식탁, 그리고 정성 가득한 밥상이 식당 한가운데 차려지니 ‘얻어’ 먹는 설움도 덜하다.
서영남 씨는 민들레 국수집을 계획하고는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위해 요리학원에 다니고 식당 허가도 냈다. 나라의 지원을 받으면 간섭받는 것은 물론 1인당 급식량이 제한되기에 일부러 지원도 사양했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은 그렇게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국수를 내놓았지만 국수로는 충분한 끼니가 되지 않거니와 노숙자, 알콜에 찌든 중독자, 어르신들에게 양식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밥과 반찬을 고루 내놓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간판은 ‘민들레 국수집’이다. 언젠가 배고픈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어 손님들이 별미나 간식으로 국수를 찾는 상상을 하며.
서 씨는 고객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자랑한다. 식당 한 켠 벽에는 화이트보드에 그네들의 이름을 적고 입맛을 기억해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태의 음식을 드려야 하는지 등등이 맞춤서비스를 위해 기록된다.

알콜 중독자나 행려자, 사회 부적응자들이 동네로 몰리고 소란을 피우는데 동네 사람들도 불편했을 것이다. 싫었고 욕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료이자 따뜻한 이웃으로 민들레 국수집과 함께 하는 운명이 된 듯 하다.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서 씨의 탁월한 흡입력이 작용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민들레 국수집이 그날그날 끼니만 해결해 주는 곳은 절대 아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그들을 일단은 붙들어 주고, 그 다음 다시 세우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곳에는 장기체류자도 있다. 더 이상 일어설 기력이 없을 때 육신의 힘을 북돋우는 한편 독립된 생활 공간을 제공하고 약간의 생활비도 지원한다. 알아서 굳은 일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찾고 고물을 팔아서라도 살아보려 애쓰는 모습에 흐뭇하고 보람을 느낀다. 현재 화수동에는 9개의 민들레의 집이 있다. 민들레 국수집을 중심으로 각자 흩어져 기거하며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국수집에 와 식사를 하고 간다. 식구 중 누군가에게 생일 같은 특별한 일이 생기면 함께 모여서 중국집에도 가고 한 사람이 병원에라도 입원하면 막노동을 해서 번 돈을 선뜻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끝내 마음을 잡지 못하고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식구도 있다. 이처럼 민들레 국수집은 단순한 무료급식소가 아니라 느슨한 공동체 형태의 사회복지시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모델로 서울 상계동과 부산 사직동에 민들레 국수집 분점이 운영중이거나 준비중이다. 이들 각각은 독립적이면서 어려울 때 서로 협력하자는 정도의 규칙만 갖고 있다.

수도원 시절부터 교도소를 돌며 교정사목 활동을 해왔던 그는 지금도 재소자 형제들과 편지를 나누는 틈틈이 한 달에 두 번 청송 교도소로 면회를 가서 상담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국수집이 쉬는 날이면 청송 교도소, 청송 2교도소, 청송감호소로 상담을 다니며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오랫동안 낮고 겸손하게 교정사목 봉사를 해온 착한 아내 강베로니카, 예쁜 딸 모니카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더욱 행복하게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민들레 국수집에 얽힌 이런 사연이 널리 알려지면서 요즘은 손님도 부쩍 많아지고 반찬거리 제공이나 후원금이 늘어 오히려 다른 복지시설에 나눠주기도 한다. 그만큼 일도 많아져 오래도록 괴롭혀온 허리디스크가 심통을 부려 치료를 받으며 봉사자 손길로 버텨나가고 있다. 몸이 고달파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곳이 이곳 사정인지라, 손 님이 ‘땡깡’을 부린다거나 술주정을 하는 돌발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대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간판도 주인을 닮은 듯 보일듯 말듯 부드럽고 온화하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불굴의 힘으로 세파를 헤쳐나가는 이들이 이 간판아래로 모인다.
주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온순한 양들이니 역시 사람 사이의 정, 그리움에 사무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 는 무엇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얼마전에는 민들레 국수집의 국수발 같은 사연과 주인장의 속내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책을 내기도 했다.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더북컴퍼니. 272쪽. 9천500원)으로 때론 가슴 뭉클하게, 때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여유로 민들레 국수집을 들어다 보게 해준다. 책값도 유별나서 요즘 책답지 않게 저렴하거니와 책 판매로 얻은 인세는 당연히 민들레의 영토를 기름지게 하는데 쓰인다.

노숙자를 위해 밥을 하고 아내를 위해 다림질을 하는 전직 수사. 그의 민들레 집은 이렇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많은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서로를 향기롭게 보듬어 주는 공간이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강한 생명력으로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는 민들레, 바람에 날리고 먼지에 구르다가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리다 또 다시 생명과 사랑의 인공위성을 사방으로 전파하리라.
민들레 국수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7시간 문을 연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아쉽지만 휴무다. 도서민들레 국수집 (032)764-8444/017-722-0349, 도서 구입 문의 (02)3438-2053


지영일 편집위원 openme@i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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