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민들레 식당 앞. 한 손님이 들어서고 있다.

“할머니~. 여기 밥이 모자라요.”
“그려? 알았어. 좀만 기둘리. 지금 푸고 있응께.”
“오늘은 버섯무침에 생선구이까지 푸짐하네요.”

22일 오후 1시쯤 인천광역시 화수동에 있는 한 식당. 부엌이 환히 보일 정도로 식당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먹음직스러운 반찬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온 이들은 다정한 인사를 건넨 뒤 흰 쟁반에 자신들의 먹고 싶은 음식들을 차례로 담았다.

이곳은 보통 식당이 아니다. 노숙자 등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바로 ‘민들레 국수집’. 그러나 일반 무료 급식소와는 차원이 다르다. 민들레 국수집의 주된 조미료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민들레 국수집 대표 서영남씨. 오늘 메뉴인 미역냉국은 그의 손을 거쳤다. 직접 음식을 푸는 모습. 활짝 웃는 그의 웃음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 진다.

민들레 국수집을 6년 동안 운영해온 서영남씨(56)는 “이들에게 밥 한 그릇보다 더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람다운 대접을 해주는 것,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라며 “공짜로 주면서 갖은 생색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코 그건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국수라도 대접해 보고자 시작했던 일인데, 국수만으로는 금방 배가 꺼져서 아예 밥집으로 전향했습니다. 나중에 이곳을 찾으시는 손님들의 영양상태가 충분하다 싶으면 국수를 내놓을 생각입니다.”(웃음)

동정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으로
2003년 4월 1일, 작은 식탁하나로 시작했던 국수집. 2005년 10월과 2008년 12월 각각 확장공사를 거쳐 지금의 민들레 국수집이 됐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땐 사람 셋이 들어가면 꽉 찼다. 그래도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밥 먹을 자리가 없으면 밖에 앉아 먹기도 했다.

맛있게 식사 하는 민들레 국수집의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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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한다. 나이, 성별, 종교 등을 따지지도,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서씨는 “제가 그들에게 봉사하거나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저 사랑의 나눔을 실천할 뿐”이라고 말했다.

민들레 국수집은 일주일 중 목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한 5일 동안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문을 연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손님들이 찾아온다. 많이 올 때는 최고 300~400명 정도. 날씨가 흐린 장마 때나 추운 겨울에는 특히 손님들이 많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오갈 곳 없는 노숙자들이다.

서씨는 1954년 부산 범냇골에서 태어나 1976년 한국 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 1985년 종신서원을 하고 가톨릭 신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부터 교정사목을 시작, 전국의 교도소를 다니며 장기수 면담활동을 벌였다. 2000년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 나가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지냈다.

서씨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25년간의 수사생활을 마치고 환속했다. 출소자 공동체인 ‘겨자씨의 집’을 만들어 함께 살았다. 그러다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국수집’을 차렸다.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동정을 주기보다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을 차리게 된 계기는 딱히 없어요. 그저 제가 하고 싶어서, 좋아서 시작한 것 뿐 입니다.”

보일 듯 말 듯한 민들레 국수집의 간판. 손님들을 배려해 만들었다.

손님들을 위한 그의 배려는 식당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보일 듯 말 듯 한 민들레 국수집의 간판. 이유를 물었더니 “손님들이 창피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너무 눈에 잘 띄면 음식을 먹으러 오는 분들이 주변의 시선 때문에 부담스러워 할 테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기억에 잘 남게 만들면 이곳, 저곳에서 후원은 많이 해주셨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순수하게 시작한 이 일이 생색내기용이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모든 음식은 셀프서비스다. 남기지 않을 만큼 가져다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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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배려는 자유배식이다. 줄을 서서 먹게 하는 일반 배식은 항상 꼴찌를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사회에서 줄서기하다 실패한 사람들인테 밥 먹으러 와서도 줄서야 합니까? 줄을 서는 대신 가장 오래, 많이 배가 고픈 사람부터 먼저 먹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약한 이들을 배려해 드리면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더 배고픈 이들과 꼴찌인 분들이 먼저 식사하시면서 밖에서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맛있는 반찬은 남겨두고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더 빨리 식사를 마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새 밖에서 기다리던 손님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자원봉사의 손길로 유지되는 민들레 국수집
서씨는 인사를 건네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말끔한 차림의 손님을 보며 “전혀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지요?”라고 운을 뗐다.

“노숙자가 더럽고 냄새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무관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나가면서 그들을 봐도 못 본척, 안 본척하잖아요.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도 면회를 가면 처음에는 구깃구깃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와요. 그렇지만 가면 갈수록 깨끗하게 꾸미고 옷도 깔끔하게 다려서 입고 나오지요. 노숙자 분들도 똑같습니다. 인사를 건네면 정말 옷매무새가 달라지지요.”

그렇게 사람들이 달라지고 있다. 작은 스쿠터를 몰고 민들레 국수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온 한 총각은 6년째 오는 단골이다.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냈고 학창시절엔 앵벌이를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노숙자의 삶을 살아오던 이 총각은 이곳에서 먹은 한 그릇의 갈비탕으로 삶이 바뀌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따뜻한 밥과 고깃국.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돈도 벌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생활한다.

설거지를 하고 계신 고영자씨.

민들레 국수집은 따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 일정한 수입이 없기 때문에 식재료나 기본용품들은 대개 후원, 기부 등으로 충당한다. 이들의 훈훈한 이야기가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어린이부터 시작해서 청년, 장년,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식사를 마친 강석원씨(51)는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곳”이라고 말했다. 친구를 따라 1년 전에 이곳에 처음 왔다는 그는 “감사한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며 “정말 민들레 식구들은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다”고 말했다.

민들레 국수집의 자원봉사 신입생 격인 고영자씨는 성당에서 처음 알게 돼서 찾아왔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정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고씨는 “힘들면 이렇게 못한다”며 “갈비찜이나 튀김, 닭죽 같은 스페셜 메뉴가 나가면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민들레 국수집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귀염둥이. 이름도 민들레다.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강아지를 서씨가 민들레국수집으로 데리고 왔다.

손님이 뜸해질 때 즈음, 근처의 작은 텃밭으로 가는 자원봉사 할머니들을 따라 나섰다. 소규모로 키우는 고추와 토마토, 상추 등의 야채들. 이곳에서 나는 것 모두 음식 재료가 된다.

“농약도 안치고 정말 말 그대로 친환경이지. 싱싱해, 봐요.”

두 번의 감동, 민들레 희망센터 문 열다
민들레 국수집으로 노숙자에게 희망을 준 서영남씨. 그가 요즘 들어 부쩍 바쁘다. 7월 10일에 문을 연 노숙자들의 쉼터 때문이다. 세상에 두 번째 감동을 선사할 그 곳은 민들레 국수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민들레 희망센터’다.

10일 개소식을 한 민들레 희망센터.

국수집에서 배고픔을 달랜 노숙자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어야 했다.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삶의 이유를 깨닫게 해 줄 문화적 배려라는 생각에 서씨는 노숙자를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쉽지는 않았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주교인천교구사회복지회와 건축가 이일훈씨,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센터를 건립할 수 있었다.

일층에 들어서자 널찍한 책상과 책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이 보였다.
2층에는 세족실과 샤워실, 튼튼한 세탁기, 입을 옷과 양말들, 최신영화와 케이블 채널까지 갖춘 TV룸, 편안하게 잘 수 있는 수면실이 있다.

서씨는 “민들레국수집에서 배불리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귀한 존재로 대접받으며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드디어 마련됐다”면서 “절망 속에서 센터를 찾은 노숙자들이 노숙생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갖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세탁실, 준비된 옷, 세족실 그리고 수면실. 내부가 새집 못지않게 깔끔하며 인테리어가 예술이다.

11일부터 본격적으로 노숙자 손님들을 맞이한 센터. 또한 천주교 사회복지회에서 파견 나온 사회복지사 1명과 자원봉사자 2명이 상주하면서 취업알선과 상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 강씨는 “정말 거짓말 안보태고 힘든 일이 없다”면서도 “굳이 하나를 꼽자면 아직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게 힘들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가장 시원하고 썰렁한 곳, 교도소로 휴가갑니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의 홀씨처럼 민들레 국수집은 삭막한 세상에 사랑을 꽃피운다. 삶이 어렵고 슬픈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밥을 먹는 서영남 대표. 힘들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국수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여름휴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시원하고 썰렁한 곳으로 가렵니다. 맞춰보세요. (강원도 설악산 등의 철없는 대답을 늘어놓자, 웃으며) 바로 교도소지요.”

정책기자단 정윤지 janegl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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