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집에 국수가 없다고 한다. 대신 그곳에는 밥과 함께 ‘민들레 홀씨’가 하나 있다. 25년간 천주교 수사였던 서영남, 그가 피워낸 희망의 이름이다. 바람에 흩날려 이리저리 날아갈 때에는 정처 없는 것 같지만, 그러다가 어느새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이 되는 민들레를 닮은 인생들이 그 희망이 일군 들판의 야생화들이다. 재소자들을 위한 교정 사목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노숙자들을 비롯한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밥집을 차린다. ‘민들레 국수집’이 그 무료 식당의 간판이다. 배고픈 사람들은 이곳에 와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가장 배고픈 사람이 먼저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의 아픔을 아는 국수집 주인의 사랑이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에서 도로시 데이라는 여성이 가난하고 병든 이, 고아, 노인, 여행자 등 누구에게나 안식처가 되고자 문을 연 ‘환대의 집’이 ‘민들레 국수집’의 모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희망을 먹고 마셨으며, 위로를 받고 기력을 차렸다. 그곳에서 일했던 피터 모린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굶주림이나 실업과 같은 문제를 국가나 부자들의 비인격적인 자선에 기대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어려움에 직면한 형제들의 보호자가 되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고 집 없는 이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복지정책이 없어도 된다거나 부자들의 기부가 전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격적 나눔’에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과 가진 것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걸인들을 적선하듯이 돕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엄한 인간의 상처받은 삶을 잠시 부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아 국수집을 연 것도 아니며, 수익이 늘어 번창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날로 사람들은 이 집을 찾고 자원봉사자들도 줄을 잇는다. 있는 것을 나누면 때 맞추어 기적처럼 누군가 나서서 그 빈 곳을 채워나간다. 그것도 나눈 것 이상으로 채워지는 놀라움을 경험한 전직 수사 서영남의 고백을 읽으면, 민들레 홀씨 하나의 힘이 무엇인지 절감하게 된다. 팍팍하기만 한 현실에서, 서영남의 책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펼쳐 들고 이 땅에서 사랑이 뭔지 새삼 깨우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