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
 


 
작성일 : 06-11-16 12:24
불멸의 여인 도로시 데이
 글쓴이 : 서영남
조회 : 7,680  

- 도로시 데이 탄생 100주년 기념(1997년) -

불멸의 여인


피터 클레버 수녀



우리는 이 용감한 여인의 백주년 탄생을 하느님께 감사하며 기념한다. 위대한 거인 같은 이 여인에 대하여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로시는 신비주의자이면서 행동가였고, 그의 비전은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에드위나 게이트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신비주의자를 규칙이나 법에 마비당하지 않는, 꿈꾸는 존재라고 서술한다. 그들은 하느님을 만났다. 하느님은 그들을 감동시키고 인류에 대한 고귀한 비전과 희망으로 그들을 채운다.

나는 도로시를 1933년, 가톨릭 일꾼신문 1호가 발행되기 바로 직전에 만났다. 1933년 5월 1일 이 신문 1호는 뉴욕의 거리에서 1페니에 팔렸다. 우리들의 우정은 그의 나머지 생애 내내 계속되었다. 1980년 11월 8일 그의 마지막 생일날, 나는 마리아의 집에서 잠깐동안 함께 있기 위하여 뉴욕으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우정을 영원히 봉하였다. 도로시는 그의 방 한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그는 두손을 뻗쳤고 나는 다정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우리는 잠시동안 “위대한 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주의 기도를 하면서 손을 잡았다. 서로 포옹하고 나는 그의 이마에 십자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그에게 구부리며 키스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우정에 대한 이별의 키스였다.

이 글은 당신에게 도로시 데이의 영적 생활에 대하여 일견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쓰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그에게 끌렸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그의 깊은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이었다. 그의 눈은 창조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손을 보기 위하여 또한 인간 생명의 아름다움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보기 위하여 열려 있었다. 그는 모든 순례자들과 함께 자신의 영감과 축복을 나누었다. 도로시의 영성은 핵심을 복음에 두고 있었으며, 산상수훈을 그 뿌리로 삼고 있었다. 그의 삶은 산상수훈과 물질적 영적인 애덕활동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안내자, 지도자를 성인 같은 사제에게서 발견하였다. 그의 이름은 죤 휴고였다. 그의 가르침 안에서, 철저한 복음과의 만남인 “위대한 피정”을 퉁하여 도로시는 거룩함에 대한 갈등을 충족시켰다.

도로시가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은 신앙의 승리였다. 사랑이 최우선순위였다. 그는 모든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세계가 주는 동료애를 넘어 하느님을 선택했다. 신앙의 어둠 속으로 도약한 그는 가난하고 정결하며 순종하려는 갈망으로 가득 찼다. 그는 하느님을 위해 살기 위하여 자신에게 죽고자 했다. 그는 피정에서 휴고 신부가 자주 인용하는 비유에 대하여 잘 배웠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도로시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내적 생활을 이해하였다. 그는 교회가 신앙, 희망, 사랑의 공동체였음을 믿었다. 교회 안에서 그의 순례는 기쁨, 슬픔, 그리고 긴 외로움의 여정이었다. 요한 복음 15장 1-2절을 실천하기 위하여 하느님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모두 쳐버린다. 그분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꾼다.

도로시는 하느님을 사랑했다. 그분은 육화된 말씀 안에서 끝없이 드러나는 분이다. 도로시의 사랑은 시장에 넘쳐 흘렀고, 영과 진리 속에서 복음을 살았다. 옹기장이는 그의 삶에서 섭리적인 사건들을 대면하도록 도로시를 항상 빚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갈망과 동기를 순수하게 간직하였고, 그의 운명을 거룩함, 정의 그리고 의로움에 대한 갈증과 굶주림 속에서 분명하게 이끌어 갔다. 그는 교회의 충실하고도 신앙깊은 딸이었다. 하느님은 성령을 그의 영혼에 불어 넣었다. 성령의 선물과 열매는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 거부당한 이들, 무력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섬김으로 솟아올랐다. 세계가 그의 관심사였다.

세계의 어떤 계층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경청한다는 것은 말해진 것을 듣는 것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까지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로시는 “사막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또 다른 이들에게 그는 진리에 대한 예언적 증언이었다. 윌리암 밀러는 도로시 데이: 전기 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도로시는 평화주의, 비폭력, 인종적 정의, 노동자들, 가난한 이들, 빼앗긴 이들, 무시된 이들의 옹호에 헌신했다. 도로시는 진실되고 인간적인 창조성을 노동에서 회복하려고 노력했으며, 비인간적인 경제 체제를 무차별로 확장시키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의 무기는 기도, 단식, 자선, 매일 미사 그리고 한시간의 성체조배 등 영적인 것들이었다. 그는 성인들의 삶에 대하여 끝없이 성찰함으로써 그들과의 일치를 이루게 되었다. 도로시는 사랑에 의해 움직였다. 나는 자선과 풍요로운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관상적 기도에 그가 도달했다고 확신한다. 관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예수와의 사랑에 갇혔다는 뜻이고 아버지께 대한 그분의 사랑을 어느 정도 체험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도로시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 두사람에 대해서도 시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피터 모린과 죤 휴고 신부였다. 피터와 15년동안 일한 후, 도로시는 그를 천재요 성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로시에게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알려 주었다. 피터는 사상가였으며 아이디어맨이었고, 사상의 명료화, 원탁모임 토론 그리고 환대의 집을 통하여 사회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휴고 신부는 피츠버그에서 온 교구신부였다. 그는 성서, 전례, 신학 그리고 문학에 학문적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초기 사제생활에서 추구하던 지혜에 대한 갈망은 피정 속에서, “침묵과의 만남”, 6일간의 완전한 침묵 속에서 더욱 견고해졌다. 이 피정은 책의 형태로, “당신의 길은 저의 길이 아닙니다”라는 제목 하에 출판된다. 도로시는 이 피정을 여러번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마치 복음말씀을 처음 듣는 것과 같아요.” 그는 이 피정을 “위대한 피정”이라고 했다. 도로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회주의자 친구들을 떠나서 가톨릭이 되었을 때 찾고 있던 것을 이 피정에서 발견했지요.” 피정은 그의 영혼을 거룩한 사랑 속에 잠기게 했고 그가 견디어 나갈 힘을 주었다.

도로시가 죽었을 때 피츠버그 가톨릭에 휴고 신부는 다음과 같이 썼다. “거의 40년 동안 나는 도로시와 그의 깊은 자아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선물이 그의 영성 안에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1980년 11월 29일 토요일 뉴욕시 빈민가의 좁은 거리들, 사람들이 법썩거리는 이 길 위에 태양의 저녁 그림자가 떨어질 때에 죽음의 천사가 도로시의 영혼을 영원한 사랑의 품안으로 인도하였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은 그의 영적 찬가에서 마음이 가난한 영혼에게 다음과 같은 축복을 내리고 있다:


영원히 그의 문가에서

나는 내 마음과 영혼을, 나의 운명도 주었다.

나에겐 더 이상의 양떼가 없다,

아무런 다른 일도 보이지 않는다.

나의 일 : 사랑. 사랑이 내가 하는 모든 일이다.




라파엘 09-10-31 18:46
 
민들레 국수집 풍경 속에 하느님의 말씀이 있어 행복합니다. 민들레 국수집을 힘차게 응원합니다!!
배경준 09-08-30 17:42
 
민들레 국수집을 만난 후로 내 삶의 좌우명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항상 즐겁고 기쁘게 살자'가 되었습니다 *^^*
마징가 09-07-30 16:44
 
우리의 의식과 마음을 바꾸어 놓은 희망전도사 수사님은 우리 복지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될 것입니다. ㅎㅎ
꿔나 09-01-19 14:27
 
따뜻한 말 한 마디, 봉사의 시간들이 가난한 이웃들에게 기쁨의 선물이 됩니다. 민들레 국수집을 응원합니다!!
비익조 08-12-01 17:24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민들레 국수집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자갈치 08-10-28 18:14
 
도로시만큼 훌륭한 삶을 사시는 수사님이 계시기에 행복합니다. 나도 늘상 햇볕같은 따뜻한 사람으로 수사님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