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
 


 
작성일 : 06-11-16 12:32
도로시 데이-교사이며 어머니
 글쓴이 : 서영남
조회 : 8,063  

-도로시 데이 탄생 100주년 기념(1997년)-

도로시 데이 : 교사이며 어머니



톰과 모니카 코넬



도로시 데이의 자서전 “긴 외로움”은 1952년 발간되었다. 모니카는 오하이오주의 엘리리아에서 그 책을 읽었다. 그 때 나이 10살이었다. 톰은 코네티컷주의 브릿지포트에서 읽었는데, 그의 나이 18살이었다.

모니카의 부모, 죠지와 카를로타 더킨 리바 그리고 그의 이모 모니카 더킨은 30대에 클리브랜드의 가톨릭 일꾼공동체를 세우는데 기여했다. 모니카는 가톨릭 일꾼신문을 읽으면서 자랐으나, 그것은 별로 큰 일이 아니었다. 그의 집에서 애덕행위는 매일 일상행활 속에서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니카 이모만이 “남는 물건”에 대하여 심각한 생각을 하였다. 그는 도로시 데이를 무척 좋아하였다. 모니카의 어머니가 공공 도서관에서 긴 외로움을 빌려왔다. 그와 남편 죠지는 뉴욕의 가톨릭 일꾼공동체에 “무료식사”를 위한 기부금을 일생 보내었다.

톰은 훼어휠드 대학교의 한 동료에게서 일꾼신문을 받아 보았다. “내가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 도로시 데이는 광신자이다. 그들은 엄격주의자들이다,” 톰의 예수회 상담가들이 경고하였다. “공적으로 이단자들이 아니면 물질주의적이다.” “너도 말썽에 휘말릴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모니카는 피터와 도로시의 비젼에 점차 빨려들어갔다. 톰의 경우 그것은 열정적인 회심이었다.

1953년 이른 봄에, 톰은 3가에 있는(뉴욕) 바우어리 지역을 처음으로 걸었다. 기차가 머리 위에서 구르고 있었으며, 아래에 있는 수천명의 사람들 위에 그늘을 드리우고 모래 세례를 퍼부었다.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길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지옥 같은 광경이었고, 몸에서 나는 악취와 폐결핵이 만연해 있었다.

크리스티가의 한 모서리였다. 톰은 바닥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뜨개질을 하며 금요일 밤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 도로시 데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는 광대뼈가 나왔고 알몬드처럼 생긴 눈과 회색머리를 따서 머리 꼭대기에 관모양으로 묶은 모습이었다. 의자는 모두 사람들이 차지하였고 벽에 줄을 선 사람들, 바닥에 앉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여자도 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들을 때엔 뜨게바늘이 화가 난 소리를 내었고 기쁠때에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었다. 어떤 사람이 소근거렸다, “저 사람이 도로시 데이야.” 또 다른 사람이 속삭였다, “가난부인!” 도로시는 그 때 세련된 모습의 55세 여인이었다. 지금 모니카의 나이와 같다.

그 후 질문과 대답이 있었다. 안전문제가 거론되었다. 모든 사람이 삶의 권리와 그것을 얻기 위한 수단에 대한 권리, 그리고 적절한 수준의 삶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기본전제를 받아들이며 아무런 도전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자 도로시가 일어났고 토론을 또다른 각도에서 확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안전, 안전!” 그는 말했다. “그저 우리가 듣는 얘기는 안전에 대해서 뿐 입니다 여기에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안전에 대하여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해야 할 큰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안전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 큰 일들을 하겠습니까?” 그는 성서를 꺼내들었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내일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라…….” 그리고 나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톰은 젊은 낭만주의자였고, 모험과 위험을 갈망하고 있었으며 위대한 일, 심지어 땅에 떨어져 죽으면서까지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했다. 도로시는 톰을 차지했다.

대학 졸업후, 톰은 큰 일을 하기 위하여 뉴욕시에 왔다. 여름과 주말 그리고 휴가에 학비를 벌든가 가톨릭 일꾼공동체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 일은 당근 껍질을 벗기거나 신문을 접는 일, 혹은 사람들을 바우어리의 “호텔”로 데려가는 일이었으며, 항상 “사고의 명료화”를 위한 모임에서 도로시가 하는 얘기를 듣는 일이었다. 언제 위대한 일이 시작될 것인가?

모니카는 1963년 가을에 학업을 계속하고 “무언가” 하기 위하여 뉴욕에 왔다. 두 사람은 책임의 의미가 무엇인지, 속죄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배웠으며, 당근을 계속 깎고 다른 모든 애덕 활동을 수행하였다. 마침내 두 사람은 1964년에 결혼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들은 미국의 합법적인 인종분리 구조를 무너뜨리는 비폭력운동에 참여했으며, 베트남 전쟁의 종식을 위한 비폭력 운동에서도 지도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는 도로시를 우리의 안내자로 삼고 그가 주장하는 바를 설파하면서 그리스도교 사상의 주류에 비폭력을 다시 통합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당근껍질을 벗겼다.

도로시는 사람들이 아무리 다르게 생각해도, 자신을 어머니로, “평범한 여성이요 많은 사람들의 어머니”로 여겼으며 그렇게 표현하였다. 그는 우리에게도 어머니였으며 둘을 맺어주었다. 그는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소명을 찾고 가톨릭 일꾼운동 내애서 가족을 키우도록 해주었다.

2차 대전이 시작된 후, 도로시는 모니카 더킨 이모에게 뉴버그에 있는 농장의 책임을 맡도록 청했다. 그러나 모니카 이모는 위스콘신에 있는 우정의 집 농장을 맡아 달라는 초대를 캐더린 남작 부인으로부터 받고 있었다. 그 때는 가톨릭 일꾼공동체와 우정의 집 사이에 봉사자들을 놓고 경쟁이 있었다. 모니카 이모가 옳은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조카 모니카가 피터 모린 농장을 돌보고 있다.

도로시와 캐더린은 당대 가톨릭 평신도 운동의 위대한 부인들이었다. 캐더린은 러시아의 이주민으로서 할렘가에서 다양한 인종들을 위한 일의 선구자였으며, 자신의 신문과 공개토론회에서 반공산주의의 입장을 분명히 표명하였다. 도로시는 냉전 문제에 관하여 어느 누구로부터도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 갈등이 있었다.

도로시는 60대 중반에 이르러 죽음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의 모습을 자주 거론하였고, 많은 시간을 어머니와 보낼 수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는 말을 하곤 하였다. 도로시는 어머니에게 바이올렛 꽃을 한다발식 가져갔고 둘은 신앙, 삶, 죽음 그리고 내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살도록 기도하지 말라”, 그는 어머니의 말을 인용했다. “난 샌프란치스코 지진과 중국전쟁, 스페인 전쟁, 두 개의 세계대전 그리고 플로리다 허리케인을 다 겪고 살았어. 그만하면 충분히 살은 것이지.” 어머니가 돌아갈 때 함께 있었던 것을 도로시는 특별한 은총으로 생각했다.

1967년 가을에, 톰과 도로시는 바티칸시의 한 건물 현관에 서 있었다. 그 때 어떤 키 큰 여인이 사람들을 헤치고 도로시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도로시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다. “도로시 데이”, 그는 심한 러시아 억양으로 신음하듯 소리쳤다. “도로시 데이,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우리 둘 다 죽기전에 당신은 나를 만나러 와야 합니다!”

생애 마지막 나날에 도로시는 울타리를 고쳤다. 도로시의 마지막 사진은 마리아의 집으로 캐더린이 마지막 방문을 했을 때 타마, 니나 모어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찍은 것이었다. 남작 부인은 도로시를 쳐다보며 말했다. “도로시 데이,” 그는 물었다, “이곳은 누가 책임지고 있습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이 젊은 친구들인가요?” “젊은 사람들입니다,” 도로시가 대답했다. “나는 은퇴했어요.”

타마는 도로시가 원했던 대로 마지막 시간에 그와 함께 있었다.


종달새 09-09-01 18:43
 
세상엔 나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수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안나 09-08-02 19:27
 
VIP손님들에게 행복을 덤으로 한 움큼씩 나누어주는 수사님이 최고로 멋져 보입니다. 짱!! 민들레 국수집을 힘차게 응원합니다.
사랑 09-05-23 17:51
 
우리 곁에 있는 모든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의 은총이고 선물입니다.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럭키걸 08-10-25 16:44
 
제 마음속에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이웃에 대한 선입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주방장님 수고하세요
매화 08-10-06 16:23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서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