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
 


 
작성일 : 06-11-30 17:37
도로시 데이(신광식글)
 글쓴이 : 서영남
조회 : 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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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가톨릭일꾼운동, 초대


신광식 (한국CLC 사무국장)



1. 우리시대의 성인(聖人) - 도로시 데이


??한상봉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당대를 사는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도로시 데이와 같은 ‘우리시대의 성인(聖人)’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한 사람의 생(生)은 그 자체로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과 구원의 섭리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도로시 데이(1897-1980)가 살았던 시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말까지는 1,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사회모순과 계급모순이 첨예하게 노출된 시기였다. 상처와 절망으로 인간에 대한 환멸이 이때처럼 극렬하게 드러난 시기가 또 있을까? 그러면서도 인간의 힘으로 그 이전에는 운명처럼 보였던 사회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전 세계를 열병처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실제로 러시아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가능성이 더해지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 또한 최고조에 이른 시기도 이때다. 이런 시대 속에서 ‘복음’에서 희망을 발견한다는 것은 당대의 지성이나 합리적인 사고방식 안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톨릭 교계를 위시한 종교가 사회변화에 소극적이거나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던 시대라고 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도로시 데이가 ‘복음’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 때문일까? 한상봉 선생의 글을 통해 도로시 데이에게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정직함’이다.


1) 자기에 대한 정직함 - 자신을 볼 줄 아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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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는 “왜 악을 처음부터 피하지 않고, 그것을 치료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가? 사회질서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성인(聖人)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종교에서 멀어진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면에서 일어나는 초월성에 대한 열망과 출산을 통해서 내면에서 맛보는 즐거움과 감사의 충동이 있다는 것을 도로시 데이는 정직하게 직면한다. 놀라운 일이다. 선한이들, 또는 선을 지향하는 이들이 빠지게 되는 유혹 중에 하나는 ‘도덕적 명분’ ‘옳은 것에 대한 집착’ ‘이래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움직임들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빛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둠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보기보다는 ‘무엇을 하는데’ ‘무엇인가로 드러나는데’ 온 에너지를 다 빼긴다. 도로시 데이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의문들, 기쁨들, 충동들을 정직하게 들여다 볼 줄 알았고, 이것이 어떤 비난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그녀의 삶에서 복음을 선택하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내적인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여기에서 하느님이 한 개인의 내면을 통해서 일하고 성장시켜가는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2) 세상에 정직함 - 세상을 받아들이는 힘


??도로시 데이는 세상 앞에서 정직하다. 도로시 데이의 삶을 보면 세상과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개방성에 감탄하게 된다. 정직하게 세상을 들여다보면 세상은 어둡고 암담하다. 사실 세상이 어둡고 암담하다고 욕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은 참으로 적다. 세상을 받아들였더라도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그속에서 새로운 전망과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은 더 적다. 세상을 적대시하고 밀쳐내고 본인은 그런 세상에 속할 수 없으며 속해서는 안된다고, 끊임없이 선을 긋으며 그 속에서 안도하는 거짓평화에 머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도로시 데이에게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환상이 없어 보인다. 어떤 체제의 변화 속에서도 ‘가난한 이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라는 냉철한 인식은 인간과 세상의 불완전함에 대한 온전한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가난한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럴때 드러나는 나의 취약함을 발견하고, 내 취약함안에 더불어 계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에서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교계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도 같은 정직함을 본다. 교회가 ‘옳으냐 그르냐’의 입장이 아니라 이런 교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달리 말하면 교회의 피조물성을 깊이 받아들이고 여기에서부터 불완전한 교회와 함께 하는 지혜를 배워간다.?

??도로시 데이에게서 배우는 것은 전쟁과 기아와 가난으로 고통받는 세상, 불합리하고 자기 중심적인 틀에 갖혀있는 교회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데서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은 불완전한 것들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연민’이라는 것을 보게된다. 이런 태도는 5000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보듯이 예수를 움직였던 실제적인 동기와 닮아있다. 세상과 인간, 그리고 교회에 대한 정직한 받아드림은?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투입하게 만든다. 세상과 인간과 교회의 모습에 대한 저항감에 휩싸여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소진시키는가? 사회의 모순속에서 ‘가톨릭일꾼운동’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 반전 평화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힘도.


?도로시 데이를 통해서 보게되는 것은 세상과 사람을 통해서 끊임없이 말을 걸고 계시는 하느님과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다. 하느님은 불완전한 것, 약한 것을 통해서 말을 거시고 당신을 드러내신다. 여기에 대한 신뢰가 쌓일 때 “우리는 가능한 방법을 다해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일치를 도모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등,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려 했음은 물론 모든 이들을 신뢰하는 가운데 그러한 선의에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우리의 단점과 남의 단점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려고 노력했다.”라는 고백이 가능하리라.


2. 가톨릭일꾼운동의 한국적 적용.


??한상봉 선생님은 이어서 도로시 데이와 가톨릭일꾼운동이 한국 가톨릭 교회 신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피고 있다. ‘참사람되어’라는 일종의 문서운동을 통해서 이것이 소개되었고 현장의 많은 신자들에게 영성적 자양분이 되었다고 확인한다. 기존의 가톨릭 사회운동이 조직과 단체 중심, 과제 중심으로 이루어져왔으며, 이런 한계는 시대에 따른 과제의 변화에 따라 침체를 겪는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현실 앞에서 가톨릭일꾼운동이 주는 시사점으로 1) 단체와 과제중심에서 ‘성인이 되는 길을 제시’하는 것, 성인(聖人)으로 가는 길을 준비시키고 경험하고 배우게 하는 것, 보다 궁극적인 것으로 중심을 새로이 하는 것 2) 개인의 영적 성장에 관심을 두고 과정에 주목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가톨릭일꾼운동 조직 자체를 어떻게 한국 교회에 소개하고 확산할 것인가 보다는 가톨릭일꾼운동이 일구어온 영성적인 지혜들과 과정들을 어떻게 한국교회 안에 확산하고 풍성하게 할 것인가가 핵심적이라고 본다.??


??이런 시사점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그동안 가톨릭 사회운동의 방향과 관련해서 수차례의 토론이 있었다. 대략은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세상의 변화에 가톨릭 사회운동이 따라가고 있지 못하고 침체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성의 정립과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업과 위상을 세우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져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침체되고 있는 원인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져왔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한상봉 선생님의 말을 빌리면 여전히 단체중심이고 과제(일)중심이었다는 것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우리가 무엇을 체험할 것인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적으로 할 것인가?’로 초점을 변화시켜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시대에 어떻게 하느님을 만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지금 가톨릭 사회운동이 겪고 있는 침체는 조직적이거나 사업적인 면이 부실해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에 깊이 동의한다. 지난 시기 가톨릭 신자과 공동체들이 현장에서 무수한 체험을 쌓았고, 누구도 인정하는 것처럼 사회변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외적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대에 어떤 영적인 지혜와 보화를 남기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너무나 빈약하다. 지난 시대 우리는 예수님을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인격적으로 보지 못하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한면 만을 부각시키고 붙들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것을 여전히 붙잡고 놓지 않은 체 빈곤해져 있는 우리를 자책하거나 고집하고 있지는 않는가? 자문해 본다.

??글을 보면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생각도 함께 해 보았다. 첫째는 어떤 형태든 공동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꼭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통해서, 세상을 통해서, 이웃을 통해서 말을 걸고 계시는 하느님 체험, 자신의 내면의 움직임을 정직하게 나누고, 형제적인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 공동체에서도 가능할 것이며, 기존 교계의 반모임을 자발적으로 성장시켜 갈 수도 있고, 지난 시절 공동의 체험을 공유한 이들이 소모임을 형성하는 것으로도 가능하리라 본다. 둘째는 세상 속에서의 체험을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보는 영적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평신도 영적 길잡이 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장님이 장님을 이끌 수는 없다. 세상속에서 일상에서 겪는 실제적인 평신도들의 체험들을 그 자체로서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성찰적으로 하느님의 이끄심을 깨달아 갈 수 있도록 성숙한 길잡이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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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초대하는 것 같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제는 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으라” (루가 5,4)라고 초대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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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김유식 09-08-03 18:34
 
민들레 국수집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존경하는 수사님 힘내세요! 짱!!
섬진강 09-05-22 19:27
 
하느님께서 내주신 길을 따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수사님의 삶이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구공탄 08-11-09 19:00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족으로 사신 도로시데이 감동입니다.수사님 파이팅!!아자!!아자!!짝짝짝.........
들꽃 08-10-16 16:59
 
감동으로 잘 읽었습니다.고맙습니다^^
상록수 09-10-29 19:16
 
늘 '나눔' 속에 사시는 민들레 수사님을 위해 저도 오늘은 묵주기도 15단을 바치렵니다~
마니또 09-07-24 19:50
 
민들레 국수집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합니다.
호롱불 09-06-02 19:15
 
민들레 국수집 소식은 언제나 행복이 넘치는 것 같아 좋습니다 ^^v
나팔꽃 08-10-23 18:00
 
남녀노소, 성별을 불문하고 민들레 밥집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VIP손님들께 삶의 의욕을 찾아주시는 수사님은 희망의 등대입니다.
인내 08-09-20 15:47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평화롭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