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서영남씨, 노숙자 인권 위해 정부지원 거부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는 햇수로 6년째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하는 ‘민들레국수집’이 있다.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는 서영남(56)씨는 이곳에 찾아오는 노숙자를 ‘손님’이라고 부른다.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문을 여는 민들레국수집에는 하루 평균 400~500명의 노숙자들이 드나든다. 서울, 오산, 천안 등 수도권 각지에서 온 노숙자들은 이 곳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양만큼 직접 음식을 담아 밥을 먹는다.

원래 서씨는 수도원에서 25년 동안 수사로 지내다 환속해 출소자들과 함께 생활했었다. 그러다 노숙자들이 비참하게 무료 급식을 받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사람답게 대접해주는 무료급식소를 만들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 2003년 4월 3평 남짓의 좁은 공간에서 시작한 민들레국수집은 2005년 한 차례 확장해 일주일 전쯤에 바로 옆 쌀집으로 터전을 옮겨 20명 정도가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갖췄다.

7일 낮 1시쯤에 들른 민들레국수집에는 노상에서 자다 손에 불이 붙어 결국 오른쪽 손가락들이 붙어버린 30대 남자, 어젯밤 잘 곳이 없어 밤새도록 걸어다녔다는 40대 남자,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이불 한 채를 포대에 담아 항상 어깨에 매고 다니는 30대 남자 등이 배고픔을 달래고 있었다. 서씨는 최근의 경기 불황 때문에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200~300명 정도 수준이던 손님들이 이명박 정부로 바뀐 뒤로 400~500명 선으로 늘어난 것이다.

◆노숙자 사람대접 위해 정부 지원 포기= 민들레국수집은 정부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다. 정부 지원을 받게 되면 하루 한 끼만 제공해야 하고 한 사람당 쌀 155g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정이라는 게 정말 인정머리가 없지요.” 서씨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맘껏 밥을 주지 못하게 하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생각이 없다. 대신 전국에서 모이는 자발적인 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운영을 해나간다. 후원회 조직을 만든다거나 부자들이 생색내기 위해 내는 돈은 사절하고 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노숙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씨의 철학이다.

◆눈칫밥 먹이는 무료급식소 = 어느 무료급식소의 경우 오후 5시에 제공되는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낮 12시에 식권을 나눠준다. 그럴 경우 200~300장으로 제한된 그 식권을 받기 위해서 아침부터 줄을 서야하고 식권을 받았다고 해도 자칫 늦게 도착했다간 밥이 모자라 허탕을 치는 일도 생기게 된다.

노숙자들은 “저녁 한 끼를 먹기 위해서 아침부터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서씨는 무료급식소의 안내원들이 노숙자들에게 줄을 제대로 안 섰느니, 새치기했다느니 하며 노숙자들을 홀대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고 전했다. 일부 종교단체들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사업은 식사를 제공하기 전 1~2시간씩 종교 활동에 참여해야 밥을 줘 배고픈 노숙자에게는 가혹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 노숙자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노숙자 더 만들어 = 다수의 사람들은 노숙자들이 게으르고, 얼굴이 두껍다고 보고, 또 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노숙자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씨의 생각은 다르다. “노숙자가 게을러서 밥 먹는 데만 찾아다닌다고 하잖아요. 근데 낮 12시에 배부하는 식권 받아서 5시에 주는 밥 한 끼 먹으려면 하루 종일 거기에만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데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서씨는 노숙자를 봐도 못 본 척하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노숙자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잃고 ‘투명인간’처럼 행동하게 된다고 했다.

또 일자리만 안겨주면 노숙자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판단 오류라고 본다. “그 사람들은 희망이 없기 때문에 돈을 줘도, 일자리를 줘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희망을 심어주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죠.”

“지금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맛있는 밥을 지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게 있어요. 바로 그런 사람들을 계속 있게 만드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죠.” 서씨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사회복지보건연대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박소원 기자 hop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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