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사진/한상봉 |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른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 헌장의 글자 수 혹은 낱말 수가 몇 개냐는 시험문제까지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민족중흥’이란 말도, ‘역사적 사명’이란 말의 뜻도 모르고 외웠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딱했다. 그 ‘민족’이 모든 국민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의 세월이 지나 청년이 되어서였다.
옛날에 비하면 정말 좋아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곧잘 듣는다. 그 때는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밥을 굶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 시절에 없었던 문명의 이기들, 자동차, 텔레비전, 냉장고, 고층빌딩 따위를 열거한다. 그러면서, 요즘 사람들은 배가 불러 편하게만 살려고만 한다고 걱정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에게 “요즘도 굶는 사람 많습니다”하고 대꾸라도 하면, 어떤 분은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 하나도 없다”거나, “그게 다 게을러서 그런 거지.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일할 것이 있는데, 편한 일만 찾고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 사람은 굶어도 괜찮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런 분들에게 그렇게 굶는 사람은 같은 민족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이 너무 많다. 가구당 주택 수가 이미 100%를 훨씬 넘었는데도, 자기 집을 장만하지 못한 사람은 열에 넷이다. 자랑의 도가 지나쳐 불치의 병이 되어버린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굶는 초중고등학생은 수 만명이 넘고 이제 대학생의 상당수는 고리의 빚을 얻어 공부를 하고, 한 시간 몇 천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해서 간신히 졸업을 할까 말까다. 세계 경제교역규모 12위라고 그렇게 선전하는데도, 실직상태에 놓인 이들이 수백만이라고 한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을 정도가 되었음에도, 자살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귀하게 키운 자녀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를 두려워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어렵게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민족의 중흥을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민족이 아니다. 다만 무능하고, 게으르고, 나약하고, 편한 것만 좋아하는 부끄러운 존재일 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민족이라고 다 같은 민족은 아니다. 여전히 한편에서는 민족의 중흥을 예찬하며 고개를 들며 태양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민족의 테두리 밖의 그늘에서 고개를 떨군 채 서성이거나 발버둥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이 심각한 불균형을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 개인의 탓이라고 여기는 분들은 교회가 가장 완전한 사회로서 또 이 땅의 하느님의 나라로서 민족중흥의 양지에 있어야 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신앙인은 그 번영의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서 바로 이 심각한 불균형의 세상 한 복판에 우리 교회가 있고, 우리 신앙인이 살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 속에서 교회는 창립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가난을 바라본다고 밝힌다. 심각한 이 불균형으로 겪는 수많은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극복하는 데 나서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받은 사명이라고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누구를 보낼까 하시는데, 그 때 이사야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야 6,8)하고 아뢴다. 그 이사야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햇볕이 따스한 양지에 가서 모자람 없이 평화를 누리는 이들과 말벗을 하러 갔을까? 한 순간도 볕이 들지 않아 추워 발을 동동거리는 이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전하러 갔을까?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양지에 가서는 꾸짖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며, 음지에 가서는 용기와 희망의 구원의 소식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하시며 그 소명을 밝히신다. 사람을 낚는다는 말의 뜻은 예수님의 행적으로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하셨다(루카 4,43).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이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 시몬이 낚아야 할 사람은 가난한 이,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된”(1코린토 15,11)것은 바로 이 구원과 해방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구원과 해방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세상 한복판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이다. 예수님처럼, 또 사도들처럼 교회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지도자들은 입으로는 민족의 중흥이니 국가의 번영이니, 선진국이니 발전이니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힘없는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변두리 그늘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변두리로 쫓겨난 사람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교회는 그 일을 하도록 예수님께서 불러 세우셨고 파견되었기 때문이다. 거룩한 이 교회는 결코 현세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는다. 교회는 오히려 비움과 버림으로써 음지로 쫓겨난 이들,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을 교회의 벗으로 삼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박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신수동성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