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점심 때 대성씨가 오늘 미역국이 특별히 더 맛있다고 합니다 어깨가 으쓱^^ 기분이 좋습니다.

주안1동 성당의 멋진 수녀님께서 맛있는 갈치를 한 상자 손질도 깨끗하게 해 주시고 간도 잘 맞추셔서 곧바로 굽기만 하면 되도록 해서 가져오셨습니다 밀가루 묻혀서 프라이 팬에 노릇노릇 구웠습니다 참 맛있게 드십니다.

배고픈 손님을 위해서 민들레국수집의 문을 여는 시간 전이라도 오시면 식사하실 수 있도록 해 드렸더니 요즘은 근처에 계신 분들이 상습적으로 일찍 오십니다 오늘도 열 분 정도가 미리 오셨습니다 준비가 덜 되었지만 식사하셔도 좋다고 했습니다

손님들이 식사하시는 동안 부지런히 돼지불고기를 볶았습니다 식사하시는 중간에 돼지불고기를 조금씩 드렸더니 밥맛이 다르다면서 좋아합니다 국수집 근처에 게신 분들은 되도록이면 시간 맞춰서 오시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이라는 매주 발행되는 잡지가 있습니다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발행합니다 2008년 1월 한 달 동안에는 제가 주일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1월 6일자 공현대축일 복음은 마태오복음 2장 1절에서 12절까지입니다 아래에 실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봉사자이신지언이 엄마가 둘째 아기를 데리고 설거지하러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지민이라는 간난 아기입니다 이제 겨우 태어난 지 예순 닷새가 되었다고 합니다혼자 힘으로는 뒤채지도 못합니다 포대기에 쌓여서 눈만 동그랗게 티 하나 없이 맑게 뜨고 있습니다 예쁩니다 그런데 지민이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저보고 아기를 보라고 합니다 넋을 잃고 아기를 쳐다보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포대기에 쌓여서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아기 모습이 참으로 평화스럽습니다 젖을 먹인 다음 아기 입을 엄마가 닦아줍니다 아기가 방긋 웃습니다 하느님이 웃으신다면 아기처럼 방긋 웃으실 것입니다 아기를 안은 어머니와 어머니에게 안긴 아기는 하느님의 모습 같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평화만 가득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멀리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박사들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아기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연약하고 애처롭기까지 한 어머니와 함께 있는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볼 줄만 안다면 어디서든지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공적으로 드러내십니다 가장 작고 여리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공적으로 나타나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작고 여린 아기처럼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면서 배고픈 우리 손님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느님의 대사 들입니다 피터 모린이 거지들을 하느님의 대사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우리 손님들이 하느님의 대사들 인 줄 몰랐습니다 손님에게 욕을 얻어먹고, 멱살을 잡혀서 끌려 다니기도 했습니다 술주정에 시달릴 때, 싸움을 말릴 때는 우리 손님들이 하느님의 대사들 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런데 작은 나눔이지만 나눌 줄 아는 하느님의 대사들 이었습니다 자기보다 더 배고픈 사람을 걱정합니다 풋고추 이백원어치 사서 사이좋게 나눠먹습니다 어렵게 얻은 막노동으로 번 돈을 아낌없이 이웃과 나눌 줄 압니다 이처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우리 손님들에게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따뜻한 체온이 남아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는 명현씨는 토요일이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사흘을 굶었기 때문입니다 서른 중반의 나이인데 별로 말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면 사흘째가 제일 힘들다고 합니다 전에 한번 염치를 무릅쓰고 경로식당에 갔다가 눈치 때문에 밥도 못먹고 뒤돌아 나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목요일과 금요일은 아예 굶어버리는 마음 여린 손님입니다 밥을 두 그릇이나 먹습니다 이제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고맙다고 꾸벅 절하고는 갑니다 애처로운 명현씨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대사 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게르르다는 핀잔으로, 감사할 줄 모른다는 비난으로, 사람대접이 아니라 짐승대접을 받으면서 비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 담 모퉁이에서 노숙을 합니다 자유공원 돌계단 밑에서 추운 겨울을 나기도 합니다 전철역사에서는 더럽다고 쫓겨나서 어쩔 줄 모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 노숙하는 이들을 만나면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헤로데 왕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됩니다 그래서 보아도 못 본 척 하기가 일쑤입니다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보아도 못 본 척 하는 사람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약삭빠른 사람들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입니다 사기를 치든, 거짓을 말하든 잘 살기만 하면 되는 사회입니다 막 사는 사람들이 으스대며 설치는 사회입니다 마치 헤로데가 왕으로 다스리는 유다와 갈릴래아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작고 여린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을 동방에서 온 박사들처럼 우리도 알아보고 엎드려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할 때,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대사들 인 가난한 사람들을 못 본 척 할 것이 아니라 함께 할 때만 주님의 공현을 볼 수 있고, 경배할 수 있고, 주님께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에 실은 1월 1일 주님 세례 축일 복음 이야기입니다 마태오복음 장 1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이루고 싶다면

허리가 아픈 적이 있어서 무거운 것을 들 때는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김치 통을 들다가 허리가 삐끗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진땀이 납니다. 며칠을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허리 통증은 없어지고 다리가 저려서 걷는 것이 괴롭습니다. 디스크가 심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봉사하러 오신 분이 계시면 잠시 동인천역 근처의 한방병원에 침을 맞으러 다닙니다. 다리가 저려서 몇 번을 쉬어야 합니다.

침을 맞으러 다니는 길이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다니는 길과 같습니다. 특이한 사실을 겪었습니다. 길에서 우리 손님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면 우리 손님도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먼저 인사를 하지 않으면 우리 손님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그냥 지나가버립니다.

“한수씨, 먼저 인사하면 안 되나요”
“사람들이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거든요.”

처음 노숙을 했을 때는 옷차림도 신경을 쓰고 냄새나지 않게 씻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없는 것처럼 대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없는 사람처럼 살았는데 갑자기 아는 체 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도 먼저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자기 이름을 불러주고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옷매무새도 신경을 쓰게 된다고 합니다. 아무데서나 볼 일도 못보고 화장실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나자렛에서의 삼십년 생활을 뒤로 하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십니다. 하느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연약한 아기로 포대기에 쌓여 구유에 누워 계신 예수님입니다.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서 짐승들과 함께 계시면서 동방박사의 예물을 받으시는 예수님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부드럽고 겸손하게 우리를 구원하러 오십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물과 피를 쏟으시면서 세례를 완성하시기까지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낮추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가로 나오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17). 예수님이 바로 왕이십니다. 왕이시면서 동시에 수난 받으시는 구세주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제 1독서에서는 이사야서 42장의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이사 42,. 7).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명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하늘처럼 섬기시고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셔서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는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이야말로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남보다 좀 더 갖고 싶습니다. 남보다 좀 더 잘나고 싶습니다. 남보다 좀 더 비싼 것을 갖고 싶습니다. 남보다 좀 더 위에 서고 싶습니다. 그래서 형제들과 다툽니다. 이웃을 미워합니다. 거짓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혹사시킵니다. 이처럼 모든 폭력과 불의의 뿌리에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 욕심이 빚어놓은 결과를 죄라고 합니다. 욕심 때문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눈먼 사람이 됩니다. 욕심이라는 감방에 갇혀서 진실을 외면합니다. 욕심이 우리를 눈멀게 하고 우리를 고통에 묶어 놓는 사슬이고 감방입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에 우리는 만족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세례성사란 죽어보지 않고도 죽음을 알려주는 성사입니다. 또 죽음을 알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성사입니다.

세례성사는 욕심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게 하는 성사입니다. 예수님은 온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눔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눔을 통해서 욕심에 눈이 먼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나눔을 통해서 욕심의 사슬에서 풀려나게 하셨습니다. 감방에서 나오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조금 덜 좋고, 덜 편해도 이웃과 아낌없이 나누는 삶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도 하느님의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17)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