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씨는 얼굴이 우툴두툴합니다 나이는 마흔 셋이라고 합니다 보름 전부터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십니다 영등포 역 근처의 어느 드롭 인 센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오전에 국수집에 와서 식사를 한 다음에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 가서 지내다가 국수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영등포로 돌아갑니다.

다섯 달 전쯤인 지난 해 십일월 어느 날입니다 그때는 남대문 근처의 후암동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월 이십만 원을 내는 쪽방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막노동을 다니면서 방세 치르고 남은 돈이 있으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그렇게 지냈다고 합니다

일거리가 없는 어느 날입니다 친구들과 공원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고 합니다 강남 삼성동 근처에 석면 철거를 해야 하는데 일당 십만 원을 선불로 주겠다고 합니다 철거하는 일인데 십만 원이면 큰돈입니다

철거현장에 따라갔습니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십만 원을 미리 줍니다 저녁쯤에 철거현장을 와서 보고 내일도 나와 달라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그 날치 일당을 먼저 줍니다

엿새쯤 일했을 때입니다 몸이 가렵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더니 얼굴에 무언가 여드름처럼 나옵니다 열흘쯤 되었는데 얼굴이 온통 울퉁불퉁해졌습니다 자기를 일 시킨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만날 길이 없습니다 하청 받아서 석면 철거만 시켰기에 책임질 사람도 회사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병원에 가 보았습니다 꾸준히 치료받으라고 합니다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석면으로 인한 것인지 어떤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이 없습니다 방세 낼 돈도 없습니다 홧김에 막걸리를 마셨는데 얼굴이 더욱더 가렵고 울퉁불퉁 부어오릅니다 소주를 마시면 막걸리보다는 덜 합니다

쪽방에서 쫓겨났습니다 방세가 조금 더 싼 영등포 역 근처로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십일 전쯤에 영등포 쪽방에서마저 쫓겨났습니다

할 수 없이 드롭 인 센터에 들어갔습니다 드롭 인 센터에는 보름 정도 머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녁에 들어갈 때는 술 먹었는지 알코올 검사를 합니다 아침 여섯 시에는 나와야 한답니다

며칠 지나면 보름이 될 텐데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모르겠다고 합니다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한 번 받아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상봉씨의 소원대로 병원에 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건강보험은 살아있습니다 며칠 있어야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16,700원이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상봉씨의 지난 세월을 들었습니다.

전라도 김제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습니다 이리 농고를 나왔습니다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올라와서 인형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합의금 오백만 원을 큰형님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 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왔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바람에 징집 면제가 되었답니다 지금도 비가 올 갓 같으면 다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정말 온갖 일을 다 해 보았다고 합니다 배추장사도 해 보고, 공장에도 다녔고, 음식점에서 일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노가다로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 나이가 마흔 셋인데 장가 갈 꿈도 못 꾸었다고 합니다 사년 전에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형들이 있지만 손 내밀 형편도 안 되어서 그냥 술이나 마신다고 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죽어라고 일했지만 살아갈 길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파란만장하기만 한 상봉씨의 삶이 쓴 소주 한 잔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봅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시는 우리 손님들의 처지가 상봉씨의 삶과 같습니다.

4월 28일(목) 오전에 치과에 가서 틀니 모형을 떴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 동안 제 치아 노릇을 해 준 틀니를 빼어서 치과에 맡겼습니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살았습니다 죽을 끓여먹었습니다 스프도 끓여먹었습니다 라면은 푹 삶아서 먹어보았습니다 만두도 푹 익혀서 먹어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씹히지 않는 죽과 스프가 그나마 먹을 만 했습니다 치아가 없는 우리 손님들을 더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월 1일입니다 낮 열 두 시에 치과에 가서 새 틀니를 받은 후에 민들레국수집으로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