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경향신문에 실린 <행복 한 그릇>의 아홉해 만의 외출이란 글입니다 2006년 2월 20일의 글입니다.

잘 살고 싶지만 잘 살아지지 않는 세상입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양파를 전부 벗겨낸 다음에야 양파 속이 빈 것을 알고 허탈해 한다면 너무 늦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덜 좋고, 덜 편해도 이웃과 나누면서 산다면 잘 살 수 있습니다.

욕심을 버려 보면 알게 됩니다 욕심을 채우고 많은 재물을 쌓아 놓고 있다고 해서 결코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이 인간을 파괴하고 욕심이 인간을 불행하게 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그대로 이 세상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민들레 국수집을 찾아오시는 VIP 손님인 이용식씨(52)는 늦게야 욕심을 버렸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용식씨는 식당 안으로는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싱글벙글입니다.

용식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억척스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크게 다쳤습니다 하반신을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홉 해 동안이나 좁은 집에만 계셨습니다 수동 휠체어는 있지만 힘이 없어서 겨우 집 주변만 다닐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혼자 살기 때문에 뒤에서 밀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전동 휠체어가 생겼습니다 한 번 충전하면 55Km나 다닐 수 있답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세상을 구경하는 재미에 손등과 팔목이 볕에 타서 피부가 다 벗겨졌어도 싱글벙글입니다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다고 합니다 아홉 해 동안이나 방에만 있었다면서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민들레 국수집에 왔지만 용식씨는 국수집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높은 계단이 두 개나 있고, 안은 워낙 좁기 때문입니다 전동 휠체어를 몇 사람이 들어 올려도 안되는 구조입니다.

쟁반에 밥상을 차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길 위에서 용식씨는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었다며 고마워합니다 어느 날은 비가 오는데도 비를 맞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용식씨가 오셨습니다 착한 우리 손님 한 분이 밥을 먹다말고 용식씨가 식사할 수 있도록 우산을 받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왔습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화도고개 언덕에서 식사할 수는 없습니다 큰 도시락을 준비해 드렸습니다 하루치 밥과 국을 담아드리면 집에 가셔서 드십니다 용식씨는 다 드시고 난 빈 도시락을 그냥 가져오시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온 정성을 들여 그릇을 씻어서 가져 오십니다.

용식씨는 이웃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에 쓰던 수동 휠체어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민들레 식구인 주헌씨가 각막 이식만이 희망인 것을 알고서는 어떻게 하면 눈을 기증할 수 있는지도 물어봅니다 용식씨는 양파를 다 벗긴 다음에야 빈 것인 줄 알았지만 늦게라도 욕심을 버리니 아홉 해만에 외출할 수 있는 큰 행복을 누린다며 싱글벙글입니다 <서영남/민들레국수집 운영자>

어제 오후에 용식씨가 휠체어를 타고 국수집에 나타났습니다 요양병원 환자복을 입고 왔습니다 지난 겨울에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을 알고 참 잘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 몇 달 만에 나타나서 한참 바라보고서야 용식씨인 것을 알았습니다 얼굴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자기가 살던 집에 가 보니까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월세를 못냈으니 보증금도 없어지고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방을 세 놓았습니다 가재도구도 전부 없어졌습니다 전동 휠체어도 없어져버렸습니다 병원생활이 너무 외롭다면서 나오고 싶은데 지낼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11월 1일 이후에 퇴원하면 방이 준비되니까 그때까지만 참고 병원에 있다가 퇴원해서 민들레의 집 식구로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저녁에 안드레아 형제에게 용식씨가 퇴원하면 보살피면서 함께 사시겠느냐고 했더니 참 좋다면서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전입니다 한참 손님 접대로 바쁜데 웬 택시 한 대가 국수집 앞에 섭니다 용식씨입니다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합니다 갈곳이 없어서 민들레국수집으로 무작정 왔다고 합니다 세상에! 우선 짐을 내려 놓고 용식씨를 부축해서 겨우 차에서 내리게했습니다 그런 다음 의자에 앉혔습니다.

병원에서 나오고 싶다고 마음먹으니까 도저히 더 못 있겠다고 합니다 그냥 퇴원했다고 합니다 용식씨 지갑에는 천원짜리 한 장이 전부입니다 20일이 되면 기초생활수급자니까 돈이 나온다며 태평입니다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성욱씨에게 국수집 이층 내 침대에서 자고 성욱씨 방을 보름만 용식씨에게 양보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좋다고 합니다 안드레아 형제에게 오늘부터 용식씨의 활동보조인으로 돌봐드릴 수 있는지 물어보니 좋다고 합니다.

오늘부터 용식씨는 우리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신관에 있는 성욱씨 방으로 용식씨 짐을 옮기게 하고, 곧바로 인천교구 사회복지회의 아녜스 수녀님을 뵈러 갔습니다 용식씨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휠체어를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만원만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즉시 수녀님께서 휠체어를 빌려서 국수집에 실어다주셨습니다 부탁드린 돈도 국장 신부님께 말씀드리고 조치를 취해주시겠다고 합니다.

새민들레 식구인 창신씨는 옥련동으로 주소를 옮겨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습니다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료급여 카드는 금요일 아니면 다음주 월요일에 미리 발급해주기로 조치를 취해주겠다고 합니다 아픈 몸을 이제 인천에서 치료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혜영씨가 옥련동에 따라갔다가강아지와 놀다가 그만 얼굴을 물렸습니다 코가 떨어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혜영씨는 정신연령이 6-7세 정도여서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티나자매님이 혜영씨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치료받게 하고 주사맞고 약도 타왔습니다 티나자매님이 지갑을 털었습니다 오늘도 또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했습니다.

어제 티나자매님이 매운 청양고추를 썰다가 그만 눈에 고추씨가 들어갔습니다 손으로 눈을 비볐습니다 큰일났습니다 빨리 집에 가셔서 대야에 물을 받아 얼굴을 담그시고 눈을 뜨시라고 했더니 아주 좋아졌습니다 티나자매님이 사랑의 쓴맛을 보기 위해 라일락 잎을 드시고 쓴맛을 보셨고요 어제는 고추씨가 눈에 들어가서 매운맛을 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