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토) 맑음

노숙하시는 분들에게 물어봅니다 "여름이 좋아요 겨울이 좋아요" 열이면 열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름보다는 겨울이 좋아요." 여름에는 벌레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겨울이 좋다고 합니다 요즘이 노숙하는 분들이 견디기엔 제일 좋은 계절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벌레도 없어서 잠자는 데 성가심이 없어서 좋다고 합니다

일거리만 있으면 좋겠는데 하루 일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고 합니다 새벽 세 시에 인력시장에 나가봐도 허탕 치기가 일쑤입니다 일하려는 사람은 많고 일거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골라서 뽑아가기 때문에 우리 손님들 차례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겨우 이틀 일했다는 분, 사흘 일했다는 분이 부지기수입니다 민들레국수집에 부끄러워하면서 들어오시는 손님들은 점점 늘어납니다 자기는 노숙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인력시장에 나가봐도 일거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어 왔다고 합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토요일에는 조금 일찍 집을 나섭니다 채소가게에 들러서 콩나물 8Kg, 숙주나물 8Kg, 상추 2상자, 무 한 자루, 양파 한 자루, 시금치 15Kg을 샀습니다 한해 전에는 오늘 보다 반 정도만 준비해도 하루 반찬거리로 충분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도착하니 대성 씨가 밥도 해 놓고 미역국을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하루에 110리터 정도의 국이 필요합니다 마른 미역 800g을 물에 불려서 국에 넣으면 됩니다 까나리 액젓으로 간을 맞추면 아주 상큼한 미역국이 됩니다.

오늘은 햇김치, 무생채, 콩나물, 우엉장아찌, 달걀장조림, 그리고 상추와 쌈장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후식으로 사탕을 준비했습니다 오후에는 시금치나물과 파전을 더 내었습니다.

아홉 시 반인데 손님 한 분이 물 좀 마시고 싶다고 들어왔습니다 식사를 하시도록 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세 분이나 쪼그리고 앉아서 식사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오셨는지 물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빨리 가셔서 식사하시자고 했더니 고맙다고 합니다.

봉사자 분들이 한 분 두 분 오십니다 콩나물 다듬고 숙주 다듬고, 시금치 손질합니다 아무래도 반찬이 모자랄 것 같아서 동네 시장에 가서 어묵과 쪽파를 샀습니다 어묵은 볶아서 반찬을 만들고 쪽파는 다듬어서 파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새로 넓힌 민들레국수집에는 네 분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이 여섯 개입니다 손님들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들고 자리를 잡는 모습을 봅니다 식탁 하나에 한 분씩 앉습니다 여섯 식탁에 한 분씩 앉으신 다음에 온 손님은 또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다가 좌석이 꽉 찬 다음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빈자리가 나면 앉습니다 그러다가 손님이 줄면 또 앉고 싶은 자리에 앉습니다.

찬웅 씨는 혼자서만 재미있습니다 정신 장애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커다란 마대자루에 살림살이를 담아서 끙끙대며 짊어지고 다닙니다 무게가 50-60Kg정도는 될 것입니다 마대자루에는 이불부터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득 담겨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밥은 두 번을 가득 담아서 먹습니다 식사시간이 한 시간이 넘습니다 아무도 찬웅 씨가 앉아 있는 식탁에는 앉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계속 옆 사람과 이야기하듯 중얼거리고 웃고 그러면서 식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손님들 중에는 지적 발달 장애가 있는 분도 있고, 찬웅 씨처럼 정신 장애가 있는 분도 있습니다 성호 씨는 나이가 마흔 정도입니다 지적발달 장애가 있습니다 덕소에서 삽니다 어느 쉼터라고 합니다 덕소에서 이곳까지 식사하러 옵니다 성호 씨는 부친이 계실 때는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몇 년 전 부친이 돌아가시고부터 거리를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쉼터에서 지내다가 얼마 전부터 덕소에서 삽니다 그곳에서는 잠만 잔다고 합니다 새벽에 전철을 타고 두 시간 넘게 걸려서 인천에 와서 점심 겸 아침을 먹고 공원을 돌면서 지내다가 이른 저녁을 먹고 덕소로 돌아갑니다

상렬 씨도 지적발달 장애입니다 나이는 서른 중반입니다 상렬 씨 소원은 청송교도소에서 십년 징역을 살고 나오는 것이 꿈입니다 핸드폰이 갖고 싶어서 길에서 주은 남의 주민등록증으로 핸드폰을 마련했다가 공문서 위조로 영등포교도소에서 여섯 달을 지내다 나왔습니다 그 때 징역을 오래 산 사람이 부러워서 혼자 "십년, 십년"이라고 중얼거립니다 부모님이 영종도에 사시지만 집에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이 가장 한가한 시간은 오후 두 시쯤입니다 손님 한 분이 식사를 합니다 아침을 드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처음 먹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그럼 어제 저녁은 드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교회에서 라면에 식은 밥 말아서 먹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두 분이 오셨습니다 오늘 아침은 무얼 드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홍익대 입구에 있는 서교동 성당에서 김밥과 컵라면으로 아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하시는 손님이 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길벗 교회에서 먹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