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의 할머니가 쭈삣거리시다가 힘겹게 입을 여십니다

"쌀 좀 주실 수 있어요"

"왜요"

"집에 아픈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어요 영감이 다섯 달이나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수발 들 사람을 못 구하고 직접 대소변을 받아내느라 고물 줍는 일을 못했더니 집에 아무 것도 없어요."

"동 사무소에 가 보셨어요"

"동 사무소에 갔다가 오는 길이예요 영감이 중풍으로 쓰러진지 다섯 달이 되었는데 여섯 달이 되어야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심사할 수 있다거든요 한 달 더 지나야 된데요."

"한 달 더 기다렸다간 기다리지도 못하고 굶어 돌아가시겠네요 고물 주우실 때 쓰는 조그만 손수레 끌고 오셔요."

순의 할머니는 일흔 다섯입니다 아들이 아픕니다 업친 데 덥쳤습니다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니 할머니가 일을 하실 수 없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 종이상자를 줍는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살 길이 없습니다 20킬로들이 쌀 한 포를 드렸습니다 떨어지기 전에 또 오시라고 했습니다.

영미씨가 재석씨 손을 잡고 정답게 걸어오십니다 재석씨는 시각장애 1급입니다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네 식구가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된지 한 해가 훌쩍 넘었습니다 지난 해 빌려드린 방 보증금은 그 동안 십만 원씩 빠짐없이 갚아주셨고요 지난 달에는 덤으로 십만 원을 후원금으로 가져오셨습니다 다음 카페의 "민들레국수집"에서 큰 도움을 주셨었습니다 새 냉장고며 생활 비품들.. 요즘은 쌀만 20킬로들이 한 포대를 드리면 조금씩 저축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자도 한 봉지 담아드렸더니, 쌀은 재석씨가 어깨에 지고, 감자는 영미씨가 들고 또 손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농에서 유기농 풋고추를 커다란 상자로 두 상자나 선물해 주셨습니다 손님들이 참 맛있게 드십니다.

새 민들레의 집 식구인 보봉씨를 위해서 무빈님과 예쁜 처녀 두 분이 살림살이를 챙겨오셨습니다 텔레비젼, 전기 밥솥, 휴대용 가스렌지, 밥상, 옷걸이, 옷, 이불, 수건, 치약과 치솔, 냄비와 수저와 그릇들 등등 너무 많아서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또 모자라는 것이 있을까 봐 거금 5만원까지 봉투에 담아 주셨습니다 서울에서 오셨는데 겨우 커피 한 잔 대접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