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일)

한여름 날씨입니다 정수기의 물이 시원해질 틈이 없습니다 냉장고에서 물을 꽁꽁 얼려서 겨우 시원한 물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제 집주인의 등쌀에 못이겨 주헌 씨 사는 방의 옆방으로 이사한 창환 씨가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더워서 칼을 가는 곳이 없다고 걱정합니다

노모와 함께 힘들게 노숙했었던 원식 씨는 이번에 겨우 서울에 취직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환경지킴이"로 일하시면서 한 달에 삼십 만원 정도 받으신다고 합니다 찌는듯한 폭염에 좁은 방에서 고생이 심하십니다 그래도 노숙할 때보다는 낫다고 하십니다 쌀과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반찬을 챙겨드렸습니다

8월 27일(월)

유해숙 교수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기숙사가 있고 식사 제공도 하고, 일도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닌 단순한 일인데 일할 사람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우리 보봉 씨라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 명은 확실하게 추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덟 명 정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콘크리트 양생을 하는데 나사를 조이고 푸는 단순한 일이라고 합니다 공장은 화성에 있다고 합니다 민들레 식구인 성욱 씨에게 일할 마음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직은 어렵다고 합니다 보봉 씨가 갈 수 있다고 합니다내일 오전 열 시에 회사 직원이 보봉 씨를 모시러 오기로 했습니다 공장에 가서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돌아와도 좋다고 했습니다.

보봉 씨의 취업을 축하하는 짜장면 파티를 열었습니다 베로니카가 보봉 씨 운동화를 장만해 주었습니다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 가서 간단한 짐을 챙겨 내일 오기로 했습니다.

8월 28일(화)

오전 아홉 시 0분 쯤 성욱 씨와 함께 보봉 씨가 밝은 얼굴로 짐을 챙겨서 왔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일하러 안가면 안돼나요"

곧바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음이 변해서 못 간다고 했습니다.

보봉 씨가 잠시 안산에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안드레아 수사님이 첫서원을 하고 휴가를 나왔다면서 국수집에 오셔서 설거지를 했습니다

8월 29일(수)

보봉 씨가 오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에 용산 지하 차도 근처로 찾으러 갔다 와야할 것 같습니다

노량진 공원에서 아들과 함께 몇 년을 노숙하다가 민들레 식구가 된 금숙 씨가 베로니카 가게에 가서 하소연을 했다고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지내는데 수도물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쌀도 떨어졌다고 합니다 반찬도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마련해 준 선불 핸드폰에 충전된 돈도 떨어졌다고 합니다

선불 핸드폰에 충전을 해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혼자 금숙씨가 오기가 어려울까 싶어서 모니카와 함께 민들레국수집으로 가게 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두 달 전에 금숙 씨에게 조금 잔소리를 했더니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얼씬하지 않습니다 월세를 내야하는 날에도 연락조차 없습니다 단칸방에 사는 흔적도 있고 아들과 함께 다니는 것을 간혹 보기도 했는데도 국수집으로는 나타나질 않습니다 잔소리가 큰 상처가 되었나 봅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온 금숙 씨에게 먼저 식사하시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왜 수도 사용료도 내지 않고 전기 사용료도 내지 않고 거의 여섯 달이나 버텼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머리만 글적입니다 왜 월세 내는 날에도 내지 않고 그냥 버티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묵묵부답입니다아들은 어버지 집으로 가버렸고, 일이라도 하고 싶어서 동사무소에 가서 일자리를 부탁해도 일자리가 없고.. 참 대책이 없습니다

쌀을 한 달 드실 양을 보내드렸습니다 반찬도 챙겨서 보냈습니다 일자리를 찾다 찾다 못 찾으면 그 때 거들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녁 무렵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여름은 이제 떠난 것 같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참 좋습니다 보봉 씨가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