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 언덕이 있어야 등을 비빌 수 있다고 합니다 비빌 언덕조차 없는 이들이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고달픕니다.

어제 민들레국수집의 하루가 끝나고쏟아지는 비를 헤치면서 기성 씨와 함께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복지 센터에 갔습니다 변호사와 상담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성 씨는 민들레국수집 초기부터 VIP 손님이었습니다 지금 나이가 스물 여덟 입니다 고아원 출신이고, 막노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힘든 일을 못하고 지하도에서 앵벌이를 하는 것도 보곤 했습니다석 달 동안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 있으면서 허리치료도 했습니다 조금 좋아지니까 떠났습니다 얼마 전에야 조금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근처에 방을 얻어서 살게했습니다 착한 의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기성 씨 허리 치료도 계속 했습니다 아주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신체검사를 받고 공익 근무 판정을 받았는데 먹고 살 길이 없어서 회피를 했습니다 그런 후에 잡혀갈까봐 두려워서 주민등록도 말소하고 이제껏 숨어서 살았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공소시효가 40세까지라면서 그때까지 버티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수하겠다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변호사께서 경찰에 기소중지가 되었는지 알아본 후에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녀님께서 신부님을 통해서 알아봐 주셨습니다 기소중지된 것도 없고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그저 헛고생을 한 셈입니다 비빌 언덕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의 슬픔입니다.

마침 대선이 가까워서 주민등록 말소자의 과태료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함께 동사무소에 가서 기성 씨 주민등록을 회복시켰습니다 과태료 5만원을 내었습니다.

고용안정센터에 스스로 찾아가서 일자리를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중졸 학력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산직인데 임금이 너무 박합니다이제 주민등록도 살렸고, 병원 치료도 하고 있고,몸 누일 집도 있고, 이제 일자리만 찾으면 바랄 것도 없는데.. 기성 씨에게 착하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착하게는 못 살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살지는 말자는 결심은 지키고 살았다고 합니다.

오늘 기성 씨와 대성 씨와 함께 인현 통닭 에 가서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기성 씨가 생전 처음 먹어본다고 합니다 만 원이나 내고 삼계탕을 먹을 꿈도 못 꿨다고 합니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요 국물도 남지 않았습니다참, 어제 저녁 때 저녁은 뭐 먹얼건지 물어보았습니다 라면 하나 끓여먹으면 된다고 합니다 밥을 해 먹지 왜 몸에 안좋은 라면을 먹으려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배만 부르면 감지덕지라고 합니다 얼마나 많이 굶었는지 모른답니다.

오늘 주헌 씨가 돈을 좀 달라고 합니다 만 원만 드렸습니다 집을 나가겠다고 합니다 나가시라고 했습니다 나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음 달에 미국에서 주헌 씨 누님이 오시는데 그냥 나가버리면 어떻하냐고 물었습니다 상관없다고 합니다 나갔다가 힘들고 어려우면 다시 오시라고 했습니다.

곧바로 수퍼로 가더니 소주 한 병을 들고 나옵니다 한 모금 먹고 숨 한 번 쉬고한 모금먹습니다 두 번에 빈 병이 되어버렸습니다 비틀거리면서 동인천 역 근처로 갑니다

내일 청송교도소를 가기 위해서 자동차를 손보기 위해서 맡겨 놓았습니다 찾으러 가는 길에 동네 할아버지께서 해바라기를 하고 계십니다 아흔 아홉이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할아버지입니다 할머니가 파출부 일을 나가서 조금 벌어오는 것으로 세 식구가 근근히 살아갑니다 자식들도 살기가 힘들어서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도 못합니다 쌀을 조금 나눠드리면 아주 큰 도움이 된다면서도 미안해 하십니다.

할아버지, 쌀이 얼마나 남았어요 이삼일 먹을 것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토요일에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더니 좋아하십니다 허리가 안 좋아서 젊은 친구들이 있을 때 보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허리 조심해야 하거든요.

내일은 떡도 해 갈 수 있고요 과일과 과자도 많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노숙 강아지 민들레 투 를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토요일까지 옥련동 민들레 식구들에게 맡겼습니다.

나물 가게에서 국산 고사리와 어묵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고사리를 들기름에 볶다가 양념장을 넣고 물 조금 붓고 뜸을 들였다가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습니다 냉장고가 그득하니까 든든합니다 추석 연휴에 찾아올 손님들 맞이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안양에서 착하신 분께서 감자를 한 상자 택배로 보내주셨습니다 토실토실한 감자입니다 고맙습니다.

동현이네 집세를 내어드렸습니다 큰소리쳤는데 아직도 힘이드나 봅니다 엄마와 아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보이는데 일하려는 마음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12월달까지는 잔소리하지 말고 기다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