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lele > 민들레보도자료 > 12/15 경향신문에서

한 때는 영화 제목처럼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신부님’을 갖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요. 그 때의 저는 ‘신부님’을 성직자로 생각하기보다는 다가가지 못할 욕망(?)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건 두 편의 영화를 통해서였지요.

중학교 2학년때로 기억합니다. 수녀로 분(扮)해 기품 있는 용모와 성스러운 이미지를 완벽하게 연출해 낸 오드리 헵번이 신부님을 사랑한 나머지 수녀복을 벗어버리고 수도원을 뛰쳐나온다는 내용의 영화 ‘파계’와 여고 2학년때 본 영화 ‘가시나무새’의 주인공 랠프 신부를 통해서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기자가 된 후 취재원으로 만난 신부님은 제게 ‘참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25년 동안 수도원에서 수사로 생활하다 환속해 국수집을 개업한 신부님이 계신다는 소식을 접하곤 그 분을 만나러 인천으로 향했었지요. 환속을 했으니 혹 어쩌면 ‘나만의 신부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고 말입니다.

‘민들레 국수집’. 서너평 남짓한 공간에 문을 여는 7시간 동안 많을 때는 150여명이나 식사를 했다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식당이었습니다. 그러나 ‘민들레 국수집’은 여느 식당과는 달랐습니다. 공짜였지요.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였습니다.

하지만 식당 주인이자 주방장이며 홀 서빙까지 맡고 있는 서영남 신부님은 무료 급식소라는 티를 내지 않고 정식 음식점으로 하고 싶어 요식업 등록 절차를 밟았습니다. 또 3개월 조리사 자격 코스에 등록해 1주일에 3번씩 학원에 나가 요리도 배웠습니다. 신부님에게 모든 손님은 ‘VIP손님’이었지요.

기사가 나간 후 신부님은 방송에도 나가셨고, 또 독자들로부터 돕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기뻐하셨지요. 금전적인 후원자도 있었지만 쌀, 고기, 김치 등 ‘현물’로 지원하는 이들이 더 많다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문자로, 메일로 알려주시던 ‘VIP손님들’의 근황을 본지에 매주 한차례 ‘행복 한그릇’이란 제하의 글을 게재해 알리고 계십니다.

저는 신부님을 통해 어쩌면 행복이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발명품 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서영남 신부님도 ‘나만의 신부님’이 될 수 없고 ‘우리들의 신부님’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요.

서로의 굳게 닫힌 마음으로부터 불어나가는 찬바람으로 인하여 더욱 추운 계절입니다. 신부님의 따끈한 ‘행복 한 그릇’으로 어려운 이웃들이 힘든 세상을 헤쳐나갈 힘을 얻듯이, 저도 일상의 사소한 폭력에도 쉽게 망가지는 작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독자들로 하여금 늘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게 하는 것, 또 제가 쓴 기사를 읽고 아픈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마음이 든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윤숙|여론독자부기자 ys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