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
 


 
작성일 : 06-10-28 10:49
진로 웹진 2005년도
 글쓴이 : 서영남
조회 : 7,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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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국수집이 만든 기적
밥 대접 좀 제대로 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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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_정덕현 / 자유기고가


민들레 국수집에서 밥을 내는 까닭
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가을의 끝자락에 인천에서 돈은 한푼도 받지 않지만 한창 성업중(?)이라는 ‘민들레 국수집’을 찾아나섰다. ‘무슨무슨 빌딩 옆’, 혹은‘무슨 아파트’ 등의 수식어가 달리지 않은 달랑 ‘인천시 동구 화수동 266-61번지’라는 주소는 그 곳이 주로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예감을 불러 일으켰다. 좁은 골목길을 몇 구비 돌아 겨우 그 집을 찾은 시각은 이미 점심시간. 몇몇 아저씨들이 식사를 하거나 마치고 나와 따뜻한 햇볕 아래 포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성큼 문을 들어서자 좁은 공간에서 몇몇 자원봉사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고, 안쪽 식탁에는 조용히 식사를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허리가 안 좋아 병원에 가셨다고, 기다리라고 하는 소리에 우선 밖으로 나와 ‘민들레 국수집’이라고 새겨진 간판을 사진에 담았다. 하얀 바탕에 노란 글씨로 새겨진 그 글자들을 보며 광고판으로는 0점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게다가 국수집에 국수는 없고 대신 밥이 놓여져 있었다. 그럼 ‘민들레 밥집’인가 하는 셈속 빠른 필자의 생각은 그러나 나중에 그 속에 숨겨진 뜻을 듣고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잘 보이지 않는 간판은 드러나게 광고를 하고 그걸 통해 얻은 소득을 나눌 줄 모르는 자본주의의 금기를 깨겠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그렇게 잘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노숙자들이 보다 편안하게 언제든 찾아와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본래 이 곳은 잔치국수를 내놓았다고 했다. 하지만 도무지 국수로는 그들의 허기를 달랠 길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밥집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굳이 가게 이름을 바꾸지 않은 것은 나중에 너무 배가 부르게 먹어서 ‘국수나 좀 달라’는 얘기가 나오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했다. 그간 갖고 있었던 봉사니 나눔에 대한 생각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찐 고구마 한 소쿠리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어느새 내놓은 것인지 찐 고구마 한 소쿠리가 모락모락 연기를 내며 식탁 위에 올라와 있었고 하나 들어보라고 했다. 점심때라 마침 허기진 차에 먹어본 찐 고구마는 꿀맛이었다. 식탁에는 젊은 여자와 나이든 아저씨가 함께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이 국수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수사의 딸이었다. 자원봉사하시는 한 아주머니가 정말 이 동네 살맛나는 동네라며 고구마를 자꾸 권했다. 들며 나며 소쿠리에 있는 고구마를 한두 개씩 집어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그걸 만들어 내놓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함박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마침 서영남씨가 환하게 웃는 낯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그는 덥석 고구마 하나를 집어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밥을 얻어먹고 고맙다고 하지 않을까
서영남 수사는 이 질문부터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동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유가 있어야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 속에는 이미 동정이 배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나눔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러니 누가 누굴 동정해서는 안되고 그저 더불어 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냐는 우문에 그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밥대접이나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게 한 켠에 붙어 있는 보드판에 ‘민들레 국수집 VIP’라고 적혀 있는 명단이 눈에 띄었다.

민들레 국수집은 가게가 아니라 가족
서영남 수사는 교도소 사목 생활을 25년간 하며 오갈 데 없는 출소자들의 뒷바라지를 해 온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2년 전 평신도로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수사라고 부른다. 수사로 있을 때는 전국의 교도소를 다니며 재소자들을 섬겼고, 98년부터 2년 동안 서울교구 평화의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기도 했다.
서씨가 처음부터 식당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식당 건물도 출소자들의 자립공동체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그가 수도원 생활을 그만뒀다는 소식을 듣고 청송교도소에서 나온 세 명의 출소자가 그를 찾아온 것이 계기가 됐다. 월세를 얻고 집수리 사업에 필요한 연장을 마련했지만 술마시고 놀다가 망치고 말았다고 한다. 그 뒤 서 수사는 그 공간을 가난으로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식당으로 바꿨다.
입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서 수사는 그들 하나하나에게 사적인 얘기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렇게 보니 점점 민들레 국수집은 가게라기보다는 한 가족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함께 식사를 하자는 서영남 수사의 말을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반찬에 마음대로 퍼먹을 수 있는 밥은 푸근한 가족애가 섞여서 그런지 구수하고 맛이 좋았다.

소주 한 잔 하시겠습니까
서영남 수사는 소주 한 잔 하겠냐고 물었다. 그 곳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알코올 중독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의 이 말은 농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글라스에 소주를 따라서 조용히 마셨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푸근하고 인간적일 수가 없었다. 그속에는 그가 대접하는 사람들 위에 서지 않고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보듬어주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후원도 기부도 받지 않으면서 어떻게 운영이 되냐는 말에 서 수사는 “그래서 기적이 아니냐”고 말하며 웃었다. 실은 이 곳은 서영남 수사 개인의 호주머니와 이웃들의 작은 나눔의 정성으로 꾸려지고 있었다.
“먼저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놓아야 합니다. 꼬불치는 거 없이 말이죠. 그랬더니 주변에서 마음을 열어 주시더군요.”
무 몇 개, 귤 조금, 음료수 몇 병, 담배 한 갑... 이런 식으로 모이는 부식과 식량이 꽤 많아졌고 또 도우미로 와서 봉사하는 이들도 점점 늘었다. 이러한 미담이 KBS <인간극장>에 소개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 왔다. 집주인은 월세보다도 가게에 쌀 떨어지는 걸 더 걱정하게 됐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쌀독은 늘 비어 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간다는 것이다.

낮은 사람들의 든든한 후원
매주 토요일부터 다음주 목요일까지 문을 여는 이 곳을 찾는 손님은 한 달에 1500명에서 200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서영남 수사는 그들을 위해 매일매일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든다. 그는 식당을 열기 전에 3개월 동안 조리학원에도 다녔다고 하는데, 딸의 말을 빌자면 “이제 다른 곳에 가서는 밥을 못먹을 정도”로 맛있다고 한다. 그건 아마도 그가 밥에 덤으로 주는 정성과 사랑 때문일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한 피곤한 인부가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 서 수사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요즘 벌이가 시원찮아서...” 그들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은 한 수사와, 하루 온 종일 일해 봐야 돈 5만원 버는 그런 낮은 사람들의 든든한 후원이 기적의 원천이었다.
문의 : (032)764-8444


아무런 후원도 지원도 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밥 한 끼 제대로 대접하겠다는 뜻 하나만으로 성업(?) 중인 가게가 있다. 그 곳에 가면 노숙자들도 출소자들도 동네 사람들도 밥 한 끼 나누며 모두 가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