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
 


 
작성일 : 06-10-28 11:00
오마이뉴스 2005년 7월
 글쓴이 : 서영남
조회 : 7,835  
지난 9일,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모처럼 시내 나들이를 했다. 새로 나온 책도 볼 겸 서점에서 일단 보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나는 진열된 책들을 죽 훑어보았다. 그때 내 눈길을 끈 책이 바로 서영남의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이었다.

수도원에서 25년간 수사로서 생활하다 오랜 고심 끝에 수도복을 벗게 된 서영남(51)씨. 그는 지난 2003년 만우절 날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음식점인 '민들레 국수집'을 열었다.

굳이 4월 1일 만우절에 문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거짓말 같은 일을 한번 저질러 보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돈을 내지 않아도 하루에 두세 번도 와서 먹고 배부를 때까지 몇 그릇씩 먹어도 조금도 눈치 받지 않는 거짓말 같은 식당을 열고 싶었다는 거다.

그저 배고픈 사람들에게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민들레 국수집'. 세 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 여섯 명이 비집고 앉으면 꽉 차는 허름한 식탁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루 120~ 150명 되는 손님들이 어느 부잣집 밥상 부럽지 않게 배부르게 먹고 가는 곳이다.

문을 연 그 해 4월이 채 가기 전에 민들레 국수집은 밥집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금방 배가 꺼진다며 밥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국수를 삶는 것보다 밥 짓기가 더 힘들어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

그래도 하얀 바탕에 노란 글씨로 쓰인 국수집 간판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밥 굶는 사람 없는 세상이 되어 별미로 국수를 먹으러 오는 그날이 될 때까지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몇 가지가 있다. 소중한 음식을 남기는 것, 정의롭지 못하게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 돈 많은 이들이 생색내려고 내놓는 후원금, 그리고 무료 급식소가 그것이다. 민들레 국수집은 무료 급식소가 아니다. 환대의 집이다. 곤궁에 처해 있고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국수집을 찾아오는 분은 누구라도 하느님이 보내 주신 고귀한 분으로 여기고 대접하고 싶다.(65쪽)

정부 지원금을 받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려면 지켜야 하는 몇 가지 규정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규정이란 것이 참으로 야박하게 보였다. 만 65세 이상만 먹을 수 있고 하루에 한 끼만, 그리고 양도 1인당 144그램의 쌀이어야 한다는 등등. 그러니 생활력이 없는 장애인이라도 65세 미만이면 문전박대를 당할 수밖에 없는 거다.

민들레 국수집은 사람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오는 곳이다. 오는 손님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한가득 안고 있다. 배고프고 헐벗고 누울 곳 없는 외로운 그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발견한다. 예수님을 믿고 평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나로서는 그분들이 찾아와 주는 것이 그저 고맙고 그래서 더 잘해 줄 방법이 없을까 궁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 (137쪽)

서영남씨는 느슨한 공동체로서 자립을 도와주는 '민들레의 집'도 운영하고 있다. 한 가닥 희망도 없이 절망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을 보면 늘 안타깝기만 했다. 그래서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민들레 국수집 주변에 월세가 싼 단칸방을 하나씩 얻어 한 사람씩 지내게 하면서 시작된 일이 '민들레의 집'이다. 그리고 노숙자들이 몸을 씻고 낮잠을 잘 수 있는 '민들레 쉼터'도 마련하고 있다.

그는 인천 만수동 수도원 시절 각박한 도시 생활 속의 따뜻한 마을 공동체를 꿈꾸었다. 판자촌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다 서울에서 시흥으로 집단이주를 하고 '복음자리'라는 공동체를 세운 빈민운동가 제정구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한다.

그는 1995년부터 교정사목을 시작하여 전국 교도소를 다니며 재소자들과의 상담을 해왔다. 지금도 민들레 국수집이 쉬는 날이면 청송교도소 등으로 상담을 하러 다니고 지속적으로 재소자들을 돌보고 있다.

나눔과 섬김이라는 값진 정신을 몸으로 실천하는 민들레 아저씨 서영남씨. 박기호 신부는 그를 우리 시대 진정한 성자(聖者)라고 서슴없이 부른다.

어린이처럼 늘 싱글벙글 웃는 그의 얼굴이 심각함에 익숙해 버린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의 겸손한 모습은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늘 소탈한 그의 옷차림새가 옷을 날개라 생각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못할 일이 없었던 그의 믿음은 돈이 있어야 일할 수 있다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264쪽)

민들레 밥집 2호점이 2005년 4월 1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상계역 근처에서 문을 열었다 한다. 민들레의 집 2호점 격인 옥련동 민들레의 집(인천시 연수구)도 생겼다. 그의 말처럼 서로 섬기고 나누는 사랑의 홀씨들이 날리고 날려 새로운 민들레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면 참 좋겠다.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이 행복해질 수 있게 말이다.
2005년 7월 25일 1판1쇄를 발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