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도 간판이 없어도"

? 거짓은 진실처럼 보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 파문을 듣고 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이웃을 섬기는 데 써야 제 몫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면?독이 되어버립니다.

? 돈이 있고 힘이 있으면 못할 게 없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차지하려고, 힘을 가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폭력과 거짓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 돈과 힘을 가져야만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랑과 진실과 정의로움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짜 간판을 달고서 자기의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살면서도 우쭐댑니다.? 거짓은 진실처럼 보이지만 거짓입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 예수님의 평범한 제자들

?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예수님은 참된 삶의 모습을 우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참된 삶인 하느님 나라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서로 사귀고, 나누고, 섬기면서 살 때 시작됩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서 사도들을 뽑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3-15).

? 예수님의 제자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우리 이웃과 같습니다. 다른 점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보잘것없는 사람을 극진히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4-45).

?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시는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가난한 서민들이었습니다. 서민들 중에서도 사람 취급도 못 받던 세리와 환자들 그리고 창녀들이었습니다.

? 신분 차별 없는 평등한 초대공동체

? 예수님은 죄인이라고 무시당하던 사람들,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극진히 섬기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하실 때도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그곳에서는 부자들만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앉아서 식사할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앉아서 식사하도록 배려하십니다.

? 길거리에서 눈 먼 이가 구걸을 하다가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직접 대면하셔서 원하시는 것을 물어보십니다. 구걸하는 사람마저도 인격적으로 대우를 해 주시는 분입니다.

?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2-5).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과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하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람 취급조차도 하지 않는 이들을 섬기시는 예수님이 싫었습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르 2,16).

?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초대교회에서도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신분 차별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를 이뤘습니다. 돈도 내 것으로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필요에 따라 나눴습니다. 부자와 학식 높은 사람과 권력자를 귀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하고 병들고 핍박받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보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4-47).

? 누구나 귀한 대접을 받는 하느님 나라

? 우리나라의 교회도 그렇습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교우촌입니다. 1784년에 실학파 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의 결실로 이승훈께서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음으로 우리나라에 교회가 시작됩니다.

? 유학자들이 학문으로 서학을 연구하다가 신앙생활로 이어졌습니다. 유학자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은 그들이 누리고 있던 재산과 명예와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가족과 생명까지도 희생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 양반이었고, 학문이 깊은 학자였고, 권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분들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알았기에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아낌없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대접 받지 못했던 상민들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교우촌이 시작되었습니다.

? 양반이든 상민이든 다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양반이라고 우쭐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신분이 보잘것없다고 주눅이 든 사람도 없었습니다. 학식이 높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재산이 많다고 으스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 배운 것이 있고 가진 것이 있다면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해 기꺼이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이처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삶을 나누던 교우촌의 생활이 있었기에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박해 속에서도, 칼 앞에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지상의 하느님 나라 같은 교우촌의 삶이 있었기에 신앙 공동체는 날로 번창할 수 있었습니다.

? 1784년에 우리나라에 교회가 시작된 후 1795년 주문모 신부님이 첫 성직자로 들어오셨을 때 신자 수가 사천 명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6년 후에 주문모 신부님께서 순교하실 때의 신자 수는 만 명이 넘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놀라운 점은 배웠다는 신자들이, 신분이 높다는 신자들이 힘이 있다는 신자들이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이웃을 섬기고 나누는 것에 힘쓰셨다는 데 있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5-7).

? 이처럼 참된 신앙은 서로 섬기고 나누는 공동체 안에서 자랍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능력을 아낌없이 이웃을 섬기고 나누는데 쓴다면 돈이 없어도 힘이 없어도 간판이 없어도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로 귀한 대접을 받는 지상의 하느님 나라 같은 그런 멋진 교회 공동체로 번창할 것입니다.

(2007년 9월호 경향잡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