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
 


 
작성일 : 06-11-16 12:29
은총은 실패 위에서 일한다!
 글쓴이 : 서영남
조회 : 7,710  
은총은 실패 위에서 일한다
짐 레이건

지난 5월 1일(2003년), 가톨릭일꾼운동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는 미사에서 댄 베리간 신부는 강론 중에, 우리는 우리의 실패를 기념해야 한다는 시저 샤베즈의 말을 인용했다. 그 메시지는 어느 때보다 나의 심금을 울렸고 감동을 주었다. 왜냐하면 꽤 오랫동안 내가 느끼고 있었던 것을 잘 표현해주었기 때문이다. 베리간 신부의 강론 내용을 세밀하게 다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실패를 기념해야 한다는 짧은 말 한마디는 일년내내 내 마음과 정신 속에서 메아리쳤다.
 
기념 미사 후 길고 춥고 눈이 많았던 겨울의 뒤꿈치를 따라 비 내리고 춥고 황량한 봄날이 이어졌다. 공동체식구들과 친구들의 죽음, 질병이 우리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마도 이락전쟁, 혹은 감옥에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길거리에도 점점 노숙인들이 늘어나고 있었던 사실도 나를 우울하게 했을 것이다. 40일 동안의 사순절은 나자산의 부족에 대해서도 성찰하는 넉넉한 기회를 주었고, 나의 실수와 결점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도로시 데이에게 너무나 와 닿았던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의 작은 길이 나에게도 자주 생각난다. 성 요셉의 집에 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예”보다 “아니오”를 얼마나 더 많이 했던가. 물론 우리가 제공하는 스프 한 사발이나 옷방에서 가져다주는 옷 한 벌에는 침묵의 동의가 묻어 있지만, 내가 했던 말은 “예”라는 말 보다 “아니오”라는 표현이 훨씬 많았다. “미안하지만 옷방은 오후 2시에 엽니다,” “이번 주간에는 빵이 없습니다,” “스프는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만 됩니다,” “미안합니다, 여유의 방이 없습니다.” 우리 문간에 오는 나그네에게 나는 수많은 방식으로 “아니오”를 말한다.
 
작은 길에 대해 생각해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때에 인내하지 못하거나 친절하지 못했는지 기억난다. 때때로 나는 귀를 기울이고 친절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을 하며, 사람들이 무엇인가 청할 때 그대로 현존해야 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때에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거나, 친구와 대화할 때 그들이 원하는 관심을 주지 못할 정도로 너무 피곤해하거나 말을 독점하곤 했는가? 얼마나 많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격려하거나 인정하지 못했던가?
 
하느님이 참으로 실패를 기념하는 쪽으로 나의 여정을 이끌고 있다면, 첫 번째 걸음은 그 실패들을 알아보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임이 분명해진다. 물론 우리 자신의 실패보다 남의 실패를 알아보는 것이 늘 더 쉬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태도마저 우리 자신의 실패라는 느낌이 든다. 쟌느 드 샹딸 성인의 말은 지혜를 준다.
 
“서로 선함과 어린이 같은 상냥함을 보여주십시오. 애덕을 갖고 서로를 참아주고 절대로 공동체의 잘못이나 어떤 개인의 잘못이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 자매들의 결점에 깜짝 놀라고 결점들을 비난하거나 살피는 것, 결점들에 화를 내는 것은 참을성이 부족한 약한 마음과 인간의 비참함에 대한 통찰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사로잡은 것은 “작은” 실패들만이 아니었다. 지난 여름, 이락에서 금방 돌아온 한 여인이 전화를 했다. 그는 미국이 침공하던 내내 이락에 있었고, 바그다드 폭격과 군대가 초기에 점령했을 때까지도 그 곳에 있었다. 우리는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그의 증언에 감사했다. 그는 내 감사를 받아들이고 나서 체념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하지만 우린 실패 했습니다.” 나는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단체의 어떤 사람들은 우리 정부가 이락을 침공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명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사람들의 노력이 훌륭했다고 생각하며, 그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인정하면서 위로받기를 바랐다. 이처럼, 사람들은 놀랍게도 아주 단순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만다.
 
그러면서 나는 평화를 위한 우리 자신의 노력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나는 우리의 미약하게 보이는 노력에 대해서도 편안하게 느낄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전세계적인 항의도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자신에게 진실하려고 노력하며, 그 진실을 증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인가? 다시 한번 도로시 데이의 다음 말이 영감을 준다.
 
“물론, 내가 감옥에 누워 이것저것 생각할 때,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인간의 자유에 관한 문제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무관심...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더욱 더 소화 데레사의 작은 길을 확신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 손에 다가오는 작은 것들을 하고, 우리의 기도를 하며 또한 그런 신앙이 커지기를 간청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나머지를 해 주실 것이다.”
 
실패를 기념한다. 나는 이 말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생각은 작은 길로, 사람들의 지혜로 돌아간다. 칼 라너는 우리들의 한계에서 나올 수 있는 두려움에 대해 말한다. 그는 계속하여 끊임없이 일상의 의무와 단조로운 사랑에 대한 단순한 충실함을 촉구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매일매일 신앙 안에 사는 신비주의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형식을 갖춘 기도 때뿐만 아니라, 고통, 기념, 섬김과 자기 비움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시간들을 신앙의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 칼 라너에게 하느님은 고독, 우정, 공동체, 죽음, 희망 같은 경험의 심층차원이며 따라서 미래로 향하는 경향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외로움, 실망과 다른 이들의 배은망덕 같은 체험도 은총의 순간이 될 수 있으니, 그런 체험들은 우리에게 초월적인 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이라고 라너는 말한다. 하느님의 침묵, 삶의 난폭함 그리고 죽음의 어둠은 은총의 사건들일 수 있다.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하느님의 은총에 깨어있다는 것이 힘들 수 있으나,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그러한 깨우침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패에 대한 기념”이라는 주제에 대한 일년 동안의 묵상은 나에게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을 더 깊게 더 넓게 해주었다. 수피 시인인 루미는 이렇게 썼다, “연인들은 실패를 통하여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실패는 내면의 왕국에 이르는 열쇠이다.” 우리는 계속되는 실패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역사와 부드럽게 만나게 된다.
 
나의 개인적인 실패들은, 어떤 성인들도 괴롭힘을 당했던 양심의 가책이나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으며 실망을 가져오지도 않는다. 또한 실패들은, 우리가 운명적으로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잘못된 얀센주의(참조:인간의 자유의지보다 하느님의 은혜를 강조한 17세기 프랑스 종교운동)적 시각으로 이끌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뉘우치고 다음번의 만남으로 큰 위로를 얻는다. 칼 라너가 상기시켜 주듯이, 이것은 모든 사람한테 다 해당되는 진실이다. 그러나 환대의 집에 살면서 너무나 많은 분명한 기회들이 계속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실패 하자마자 얼마 안되어 기회들이 자주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실패에 대해 성찰하면서,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보잘 것 없는 종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참으로 파악하게 된다. 하루를 돌아다보며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초대를 정직하게 듣고 응답했다고 느껴지는 날에도, 나는 하느님의 수많은 선물 앞에서 “모든 것을 하라는 대로 다 했을 때에도 너희들은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다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날들은 드물고, 보통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할 바를 다 못했던 날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나 자신의 부족과 결함에 한정되지 않는 사랑이라고 믿는다.
 
지난 여름 어느 날, 공동체 식구 한 사람이 약간 화가 나서 반쯤 투덜거리며 꾸짖는 말투로 내뱉었다. “도로시 데이! 그는 그리스도교 때문에 자신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어요.” 나는 도로시 데이를 위대하게 평가하고 그의 저술과 모범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웃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것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로시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변화가 많은 삶을 살았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뒤죽박죽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낫게 덜 엉망으로 살아간다. 마지막에 가서 실패들을 기념한다는 것은 또한 그런 엉망진창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매일매일 실패와 올라가는 어려운 순간들을, 할 수 있는 껏 즐겁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실패의 사람들이며, 십자가의 영성과 어리석음에 기반을 둔 백성들이다. 우리집 작은 마당의 뒷벽에 걸려있는 낡은 십자가는 비바람에 닳았고 철사로 묶여 있는데, 우리가 실패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그 곳에 걸려 있는 녹슨 예수의 모습- 고문당하고 처형당했으며 그의 메시지는 거부되었고 친구들은 배신하고 부인하고 그를 버렸다-은 우리 신앙의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부활의 백성이며, 용서받고 새로 태어나는 백성들이다.
 
-가톨릭일꾼신문 2004년 3-4월호에서


뻐꾸기 09-10-10 15:42
 
민들레 수사님을 통해 신앙인의 삶의 길을 밝혀주시니 감사드릴 뿐입니다. 위안과 희망을 읽습니다.
김루카 09-07-08 12:15
 
민들레 국수집은 어둠을 밝혀주시는 등대요, 정확한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요,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는 길동무입니다.
맹자 09-04-03 17:08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런 아름다운 일이 있기에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게 아닐까요? 민들레 국수집 짱!!
호빵맨 08-10-22 16:02
 
나약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에게 수사님은 사랑이라는 날개를 달아주고 두려움과 공포에서 뛰쳐나와 세상을 훨훨 날게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새벽별 08-09-21 18:57
 
모든 민들레 식구들과 민들레 꿈 아이들에게 천년동안 희망과 꿈을 전해주는 민들레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수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