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예수가 전한 것은 예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공생애 동안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행위는 모두가 하느님 나라와 관련된 것입니다.
당신의 제자들과 군중에게 가르치고 선포하며,
죽기까지 십자가 위에서 증언한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33년 예수의 짧은 생애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선포와 그 나라의 도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 나라이고 하나님 나라가 예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곧 하나님 나라 그 자체였습니다.

과연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요?
과연 그 나라의 복음이란 무엇인가요?

누가복음 4:16 이하​에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에 늘 하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책사가 선지자 이사야의 책을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는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아 읽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에게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 읽기를 마치고 책을 덮어 책사에게 주고 앉으니 회당의 모든 사람들이 주목했습니다.
예수께서 이사야의 글에 이어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응하다'라는 말은 '물음이나 요구, 필요에 맞추어 대답하거나 행동하다'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듣는 자들의 반응에 따라서 나타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주 기도문을 암송합니다.
그 기도의 응답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는 수직관계, 높고 낮음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사람들끼리 서로가 골고루 평등한 수평관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기를 포기하고 땅으로 내려와서 사람이 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여기 땅에 있는 세상 나라인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고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입니다.

나라는 같은 나라인데 법 제도가 다릅니다.
더 이상 종이나 노예제도가 없습니다.
여성을 차별하고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일이 없습니다.
살인이나 도둑질이 없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나라입니다.
굶주림이 없고 병듦이 없으며 종 노예 죄수가 없는 자유 평등 평화의 나라입니다.
낙원 파라다이스 극락 천국이라고 하지요.

그 나라에 응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이루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몸소 이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가진 것을 힘껏 나눠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엔 자선단체에서 착복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베풀면서 권세를 부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거론하면서 부패한 종교단체가 부지기 수입니다.
역사 이래 세상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 종교가 썩어 구린내 나는 암흑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면, 생명은 거기에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 사람이 살만한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부처님 나라이면 어떻습니까?
여기에 그런 곳 하나를 소개합니다.

그래도 줄을 선다면

동인천 역에 가면 ‘민들레 국수집’이라는 무료 급식소가 있습니다.
주로 노숙자나 실업자, 이주 노동자 등이 바로 이 집의 손님들입니다.
간혹 이 집에서 일어나는 삶의 모습을 보면 하느님 나라가 저렇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에는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간이 의자가 열 개뿐입니다.
그런데 하루 일곱 시간 동안 삼백 명이 넘게 식사할 때도 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쉰 명이 넘게 식사를 하는 셈입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날입니다.
급하게 반찬거리를 사서 돌아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손님에게 담배를 하나씩 나눠 드리면서 “줄을 서지 맙시다.
줄 서기에서 밀려나 밥 한 끼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우리인데,
여기에서마저 선착순에 따라 밥을 먹는다면 너무 마음 아픈 일입니다.
약하고 배고픈 사람이 먼저 먹어야 순서가 맞습니다.
그래도 줄을 선다면 꼴찌부터 밥을 먹어야 합니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순식간에 줄이 흐트러졌습니다.

“어제저녁도 못 드신 분?” 하자 몇 분이 손을 듭니다.
어제저녁도 드시지 못한 분이 먼저 식사하도록 했습니다.
손님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더 배 고픈 사람, 더 불편한 사람, 더 약한 사람을 조금만 배려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따뜻한 배려로 먼저 식사하게 된 손님들은 양보해 준 뒷사람들을 배려해 줍니다.
반찬도 다음 사람이 드시기 좋도록 남겨 드립니다.
고마운 마음에 조금 더 빨리 식사를 합니다.
어느새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이 한 분도 없습니다.
-서영남, “그래도 줄을 선다면”, [야곱의 우물], 2008년 5월 호 중에서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처음 사랑을 계속 유지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정신을 가지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노력하며 불변의 사랑을 지키려는 정신이 귀합니다.
약자들 편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입니다.
그런 빛의 사자들이 있기에 암울한 세상이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진실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산돌.